귀순한 북한 병사 A 씨가 기생충뿐 아니라 B형 간염, 폐렴까지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북한 내 감염병 실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 내 감염병 실태를 감시하기 위한 예산은 한 해 3000만 원 수준에 불과해, 통일 이후 ‘아웃브레이크(감염병 대유행)’ 사태에 대처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질병관리본부(KCDC)의 ‘북한이탈주민 건강관리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 중 A 씨처럼 B형 간염을 앓는 사람의 비율은 남성은 12.4%, 여성은 10.4% 수준이다. 국내 B형 간염 유병률(남성 3.6%, 여성 2.7%)보다 각각 3.4배, 3.8배로 높다. 북한에서 결핵에 새로 걸린 환자는 2010년 인구 10만 명당 432명에서 2015년 561명으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이 가장 높은 한국(인구 10만 명당 80명)의 7배나 된다.
귀순 병사가 앓는 폐렴은 총에 맞아 생긴 것으로 추정되지만 만성 폐렴은 북한에서 흔한 질병이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북한에서 숨지는 1∼5세 영유아는 한 해 1만여 명으로, 폐렴은 이들의 사망 원인 중 약 14%를 차지한다. 한국에선 2014년부터 영유아 및 65세 이상 노인의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무료로 지원해 환자가 줄고 있다.
북한에서 흔한 기생충 감염도 한국에선 농작물 관리를 강화하며 줄고 있다. 1971년 84.3%에 달했던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2012년 2.6%로 낮아졌다.
현재 보건당국은 중국 옌볜(延邊) 등에 ‘해외 거점 실험실’을 설치하고 북한 내 감염병 환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2014∼2015년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 등 8곳 주민 734명을 조사한 결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쥐를 통해 감염되는 신증후군출혈열 바이러스 감염자는 64명(8.7%)이었다. 국내에선 전체 인구의 0.001%에 해당하는 500여 명이 환자로 신고된 것과 대조적이다. 신증후군출혈열은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15%에 이른다.
하지만 해외거점 실험실을 통한 북한 감염병 감시 예산은 몽골, 베트남, 필리핀 사무소 등을 통틀어 연간 1억여 원에 불과하다. 이 중 중국 지역에 할당된 예산은 3000만 원이 채 안 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예산과 인력 부족은 물론이고 중국의 폐쇄적인 생물자원(병원체 등) 반출 제한 탓에 깊이 있는 연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김영훈 고려대 의대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 교수는 “감염병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조기 사망률은 한국인의 4.7배다. 인적 교류에 대비해 남북 통합 질병관리본부를 만들어 감염병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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