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 시 고용승계를 하지 않으면 세금납부 연기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정부 세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난색을 표명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노동 정책을 잇달아 내놓는 가운데 정부와 재계의 갈등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9일 국회와 재계에 따르면 9월 정부가 법인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데 대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회와 정부에 ‘구조조정 지원세제 개정법안 검토’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전달하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 법안은 기업이 다른 기업을 합병할 때 피합병회사 근로자 중 80% 이상의 고용을 3년간 유지해야만 자산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이연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과세이연은 기업의 원활한 자금 운용을 위해 취득 자산을 팔 때까지 세금 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다.
기획재정부는 법안에서 합병·분할 등기일 한 달 전에 고용하고 있던 근로자의 80% 이상을 그대로 고용승계하고 사업연도 종료일까지 유지하면 합병법인에 과세이연 혜택을 주기로 했다. 단, 합병·분할 뒤 3년 안에 고용승계 인원이 80% 미만으로 줄어들면 연기했던 법인세를 추징한다. 회생절차, 워크아웃 등을 진행 중인 부실기업은 이 같은 요건 적용에서 제외된다. 기재부는 “인수합병 등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이 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상의는 이 법안이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먼저 3년간 고용 80%를 유지하려면 매년 이직률이 평균 7% 선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매년 이직률은 25%에 이른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2013년)에 따르면 이직자 중 76%는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이직’이다. 대한상의는 “근로자가 개인 사정으로 이직하는 등 사유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인세를 추징하도록 해 입법 취지를 벗어난 과잉 규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합병 뒤 새로 고용하는 인원을 반영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한상의는 합병한 기업의 기존 근로자 10명 중 3명이 개인 사정으로 나가는 대신 3명 이상을 새로 채용해 근로자 수를 유지하거나 더 늘리더라도 무조건 법인세를 추징하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경직된 고용승계 요건 때문에 기업이 피합병회사의 근로자를 줄이지 않는 대신 역량과 관계없이 합병회사의 근로자를 먼저 내보내는 피해 발생도 우려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 간 인수합병이 활성화돼야 기업이 발전하고 어려운 기업도 다시 변화를 꾀할 수 있는데, 이런 규제들로 인수합병이 얼어붙으면 결국 기업 도산과 근로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0%라는 고용유지 비율도 기업 현실을 제대로 다시 조사하고 이직률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상진 전문위원도 검토보고서에서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요건에 고용승계를 추가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이로 인해 기업 구조조정이 약화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고용환경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고용승계 조건이 기업 간 인수합병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80%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구조조정 세제에 포함돼 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중소기업중앙회에도 의견을 물어봤는데 큰 반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재위 조세소위원회에서도 일부 의원이 기업 현실을 무시했다는 문제 제기를 해서 내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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