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한국을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로 지정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을 제외하면 태평양 및 대서양의 소규모 섬나라가 대부분이라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닌 국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어도 내년 중반까지 한국에 씌워진 ‘조세피난국’ 딱지를 떼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이 조세회피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는 동안 대만, 태국, 터키 등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국가들은 EU와 세금제도 개편을 약속하면서 블랙리스트 지정을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제대로 대처만 했어도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7일 EU 조세회피 보고서 등에 따르면 한국이 EU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를 벗어나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U는 연 1회 조세회피 리스트를 수정한다. 명단 갱신은 빨라야 2018년 상반기(1∼6월) 이후다.
기획재정부는 세계관세기구(WCO) 연차총회 참석차 이집트에 출장 간 이상율 관세국제조세정책관을 6일 벨기에 브뤼셀 EU본부로 보냈다. 하지만 기재부 측은 7일 오후까지도 “EU 책임자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다음 주에 열릴 한-EU 공동위원회 등을 통해 한국의 생각을 설명할 계획이다. 국제조세 분야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설령 당국자를 만나 설명하더라도 이미 보고서를 확정해 발표한 EU가 한국 편의를 봐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당초 EU는 미국 등 92개국을 ‘예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문제가 있는 조세 제도를 평가하겠다”고 통보했다. 한국은 외국인 투자 기업에 최장 5년 동안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외국인 투자 조세감면 제도가 ‘문제가 있는 조세제도’로 꼽혀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됐다. EU는 2018년 말까지 이 제도를 고치라고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문제가 미국, 중국, 일본에만 편중된 한국 경제외교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기재부 본부에서 공식적으로 EU 관련 일을 맡고 있는 직원은 대외경제국 통상조정과 사무관 1명뿐이다. 그나마 북미 경제협력 등의 업무와 병행한다. 브뤼셀 주EU 한국대표부에 주재하는 재경관 1명이 대(對)EU 채널이지만 동향 및 정보보고 정도의 업무에 그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EU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경제 당국자가 없는 상태에서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이번 문제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EU의 이번 블랙리스트 등재가 부당하게 이뤄졌다면 한국이 EU와 접촉해 “명단에서 빼 달라”고 요청만 할 게 아니라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에 한국과 함께 EU 조세회피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파나마는 이날 항의 차원에서 EU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마카오, 튀니지, 나미비아 등은 “EU의 결정이 편향적이며 재정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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