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등으로 실추된 정부에 대한 믿음이 회복된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탈(脫)원전 등의 정책은 전문가 의견을 보다 많이 반영해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2017 대한민국 정책평가’는 이같이 요약된다. 정부에 대한 지지와 신뢰도가 커지면서 조사 대상 40개 정책의 평균점수는 크게 올랐다. 하지만 ‘핵심 정책’으로 분류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관련 정책은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정책 전문가의 평가가 일반 국민보다 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지지를 지나치게 의식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에 대한 경고라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 40개 중 37개 정책이 ‘보통 이상’ 평가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동아일보-고려대 정부학연구소의 정책 평가는 ‘보통’ 기준을 3.0점으로 본다. 올해는 40개 정책 가운데 37위에 해당하는 ‘주택시장 안정화’(3.01점)까지 3.0점을 넘기며 정책 대부분이 보통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국정 농단 사태가 벌어진 지난해는 보통 이상의 평가를 받은 정책이 21개에 그쳤다. 2015년(25개)이나 2014년(26개)에도 보통 이상 정책은 30개를 넘지 않았다.
이는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올해 3.27점으로 지난해(1.79점)에 비해 배 가까이 높아졌다.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2.14점→2.86점), 평가 정책이 국민의 삶의 질에 기여하는 정도(2.95점→3.55점) 역시 동반 상승했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여건은 그만큼 향상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 처음으로 조사했는데 이 역시 평균 이상인 3.55점으로 나타났다. 연구소 측은 “높은 대통령 지지도가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 것이다. 정책 추진에 있어서 우호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전문가들이 ‘저평가’한 공약 정책
하지만 대선 공약 관련 정책은 줄줄이 하위권을 맴돌았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최저임금 인상’(39위·2.95점),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추진 중인 ‘주택시장 안정화’(37위·3.01점), 공론화위원회를 거친 ‘탈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육성’(33위·3.10점) 등이 주요 공약이면서도 이번 조사에서 하위권에 머문 정책으로 꼽혔다.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31위·3.11점)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공약 관련 정책의 점수가 낮은 데는 일반 국민보다 전문가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대선 때 불거졌던 주요 정책에 대한 전문가 논란이 이번 조사가 이뤄진 11월까지 지속됐다는 해석이 있다. 40개 정책 중 39위인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연구소 측은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오히려 보호하려고 했던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문가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37위인 주택시장 안정화 역시 “만족하지 못한다”는 전문가 응답 비중이 42%에 달했다. 일반 국민의 부정적 응답률은 25.1%에 그쳤다. 33위인 탈원전 정책 역시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을 2.6점으로 매겼다. 현실성이 없다고 본 전문가가 더 많다는 뜻이다. 최진욱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찬반이 갈리는 대통령 공약은 그 결과가 드러나야 전문가들 사이의 우려가 줄어들 것이다. 꾸준히 정책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점수가 낮은 정책은 각 시도교육청이 실시하는 혁신학교 운영 확대(40위·2.83점)가 꼽혔다. 교육부가 해당 정책을 중앙정부 차원으로 확대할 계획인데 이 경우 지역 특성과 학생의 개성을 살리는 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학기를 정해 다양한 체험활동을 독려하는 중학교 자유학기제(38위·2.98점) 역시 정책 목표와 현장 현실 간 괴리가 큰 제도로 꼽혔다.
○ 생활밀착형 제도는 호평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활밀착형 정책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은 올해도 이어졌다. 올해 좋은 정책 1위로 꼽힌 보건복지부의 ‘국가 예방접종 지원 확대’(3.87점)가 대표적이다. 국가 예방접종 정책은 1954년에 시작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 정부는 매년 지원 대상과 백신 종류를 늘리는 등 정책을 다듬으면서 만족도가 높은 정책으로 선정됐다. 연구소는 “오래된 정책이지만 조금씩 수정하면서 꾸준하게 실천한 데다 최근의 저출산 고령화 트렌드도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2위에 오른 초등돌봄교실(3.84점) 역시 매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에 1위에 올랐고 지난해와 올해는 2년 연속 좋은 정책 2위에 올랐다. 저소득 한부모 가정이 늘어나는 시대 흐름을 반영했다는 평가다.
도시숲 조성(4위·3.65점)은 사회 각계각층이 골고루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정책으로 꼽혔다. 6·25전쟁 참전 미등록자 발굴(5위·3.57점), 중국 어선 불법조업 단속 강화(6위·3.56점) 등도 올해의 좋은 정책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 일반인-전문가 2200명 설문… 4개분야 3단계 평가 ▼
‘2017 대한민국 정책평가’는 동아일보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한국리서치와 함께 올해 5월부터 7개월간 준비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국민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 주요 정책을 평가해 정책 품질을 높이고 국민 생활 향상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2014년 첫 평가를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이번 평가는 경제, 사회복지, 교육문화, 외교안보 등 4개 분야로 나눠 진행했다. 각 부처에서 꼽은 대표적인 정책 목록을 받은 뒤 동아일보 각 부처 담당 취재진, 연구에 참여한 교수 등이 목록의 적정성 여부를 검토했다. 일반 국민 600명, 분야별 전문가 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분야별로 10개씩, 총 40개의 정책을 평가 대상으로 확정했다.
정책평가는 3단계로 진행했다. 우선 일반인 2000명, 전문가 200명 등 총 2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단계로 연구진이 부처 설명자료,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9개 평가지표에 따라 ‘정성평가’를 실시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 전문가, 연구진의 평가 결과에 가중치를 반영해 합산한 뒤 최종 평가점수를 확정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