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연기 제안]靑, 中요구 쌍중단엔 선 그었지만… “대화 분위기땐 훈련축소 논의 가능”
틸러슨 “알지 못한다” 한때 논란… 연합사 “동맹 결정 수용”에 진화
맥매스터 “실패 반복할 시간 없다”… 北 도발땐 美 강경론에 되레 기름
한미가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훈련 연기를 제안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 한미연합사령부는 20일 “동맹의 결정을 따를 것을 확인한다”고 호응하고 나선 것. 아직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최종 결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도 이를 적극 검토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미 NBC방송을 통해 전해진 직후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9일(현지 시간) 캐나다 외교장관과의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례 군사훈련과 관련해 예정된 것을 바꾸는 어떠한 계획도 알지 못한다(not aware)”고 말했다. 청와대는 당황한 눈치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전달한 건 확실하다.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논란이 계속되는 사이 청와대에 힘을 실어준 건 한미연합사였다. 연합사는 보도자료를 내고 “동맹 결정을 따를 것이다. 적절한 때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요즘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이 정말 역할을 잘해 주고 있다”고 했다.
북한 측은 그동안 여러 채널을 통해 내년 2, 3월 열리는 한미 연합 군사 연습 키리졸브와 독수리훈련을 취소하거나 중단하지 않으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키리졸브와 독수리훈련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군사 훈련이다. 이번 제안이 북한에 확실한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번 제안은 미국과 중국의 역할을 고려한 다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중국은 북핵 해법으로 줄기차게 북한 도발과 한미 군사 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雙中斷)’을 제시해 왔으나 미국은 “협상을 위한 협상은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하지만 북한 도발 중단을 조건으로 평창 올림픽까지 일시적으로 훈련을 연기하는 이번 제안은 중국이 주장하는 ‘쌍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낮은 단계의 상호 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림픽이 평화롭게 치러지고, 북한이 올림픽에 참여해 대화로 흐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군사 훈련 축소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훈련 연기가 궁극적으로 변형된 형태의 쌍중단 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제안에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지난달 29일)에 이어 내년 초에 ‘핵강성대국’의 입지를 굳히는 추가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군 당국자는 “오히려 북한이 평창 올림픽을 겨냥한 모종의 도발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로 훈련 연기 구상이 실패하면 미국 내 강경론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를 거론했던 틸러슨 장관은 “북한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우리는 대화할 수 없다. 우리는 이(대북 압박작전)를 거둬들이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도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CBS방송에 출연해 “(북한 핵보유) 위험을 참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대북 협상의 전제 조건에 대해 “비핵화를 향한 첫발을 뗐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들의 (핵)프로그램이 많이 진척돼 그런 일(전임 정권 실패)을 반복할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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