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지난해까지 한국과 미국에 보여줬던 태도를 동전 뒤집듯 반대로 보여줬다.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라’며 매달리던 미국엔 “전쟁 억지력을 확보했다”며 짐짓 여유를 보였다. ‘대화에서 빠지라’던 한국엔 “북남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자”며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날 신년사에서 핵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결국 김정은이 지난해 줄곧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다가 대답을 듣지 못하고 제재 국면만 강화되면서 궁지에 몰리자 한국에 유화 메시지를 던지며 일시적 탈출구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북핵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한국에 손을 내밀어 한미동맹을 흔들고 남북 관계를 지렛대로 대미 협상을 진척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 김정은, 한반도 정세 주도권 노리나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육성으로 처음 평창 겨울올림픽을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여러 경로로 평창 올림픽 참가를 독려했는데 김정은이 본인 육성으로 반응을 내놓은 것. 김정은은 평창 올림픽에 대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 “동족의 경사”란 표현까지 써가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밝힌 것은 대회의 안정적 개최와 흥행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북한 선수단 참가와 관련된 체육회담에 그치지 않고 올림픽 기간 우발적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회담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요구할 반대급부에 쏠린다. 그냥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겠느냐는 것이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 축소뿐만 아니라 통일 분위기 조성 등을 내세워 5·24조치 및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통일부도 신년사 분석 자료에서 “북한이 경제 분야 전반의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대남관계에서 (대북 제재의) 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며 여러 협력을 요구할 경우 ‘남남갈등’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대북 제재에서 이탈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나아가 한미 전시작전권 전환, 미국 첨단 무기 도입 등과 같은 국방 과제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화해 메시지와 별개로 올해도 핵폭주 이어갈 듯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단추가 내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 “우리(북한)의 핵무력은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이라며 미국을 위협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삼갔다.
그 대신 김정은은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독려했다. 특히 김정은은 “적들의 핵전쟁 책동에 대한 즉시적인 핵반격 작전태세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 참석하며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듯했으나 결국 추가 도발로 관계 경색의 원인을 제공해 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 참석 타진 카드를 던진 것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검증 등 핵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ICBM을 (실전에 쓸 정도로) 아직 완성한 게 아니고 추가 핵실험도 필요하다”면서 “북한이 어떻게든 (대북 제재의) 판을 흔들어 보려고 하는 것 같고, 한국과 진심으로 뭐를 해보겠다는 것보다는 대북 공격을 할 수 없게 ‘미국을 좀 붙잡아 달라’는 뜻으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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