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상의회장 “20대국회 기업 법안 1000여건중 690건이 규제법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일 03시 00분


박용만 상의회장 ‘규제공화국’ 비판

“세계 시장을 내다보면 눈앞이 깜깜하고 여기서 느끼는 무력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이 출입기자단과 가진 새해 인터뷰에서 ‘규제 공화국’으로 치닫는 국내 현실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재계 수장 역할을 맡고 있는 박 회장의 위기감은 새해 경영계 전체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상의 회관 집무실에서 인터뷰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우리 사회의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규제 수준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보다 규제가 더 많아 불편한 대한민국’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이어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이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회장은 “규제개혁이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언급이 돼 둔감해진 것 같지만 정말로 심각한 얘기”라며 중국의 사례를 들었다. “정말 신경 써야 될 게 많은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하는 규제보다 우리가 더 규제가 많아 불편하다. 특히 새로 생기는 산업이나 중대한 변화에 대해 규제의 벽이 더 많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나.”

드론(무인항공기) 산업이 실례로 거론됐다. 중국은 정부가 나서 드론 산업을 지원하고 키우려는 추세지만 한국은 무게, 안전성 인증, 비행신고 등 각종 규제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야도 중국은 정부가 기업과 손잡고 공공정보 공유 플랫폼 구축을 추진 중이지만 한국은 개인정보 보호 규제 때문에 활용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매사추세츠공대(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발표한 세계적인 혁신 기업에 한국 기업은 1개도 없었고 중국은 7개나 있었다”며 “낡은 규제들은 이제 좀 정말 없앨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이 진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는 “규제를 바꾸면 수혜자와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에 담당자가 조사나 처벌, 불이익을 우려해 규제를 바꾸는 데 앞장서지 않고 입법부는 논쟁만 거듭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규제를 양산하는 국회에 대해선 “20대 국회 들어 기업관련 법안 1000여 건 중 690여 건이 규제 법안”이라며 “진짜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이 가니까 규제 개혁 목소리가 이제 별로 자극도 안 된다”며 무력감을 호소했다.

박 회장은 현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해 다른 정책은 정부와 보조를 맞추려 노력했지만 규제만큼은 시급히 해결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새해 정부 정책에 대해선 “지금까지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시기였다”며 “지금까지 나온 정책 방향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막기 위해 완급을 조절하고 갈등을 푸는 것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근로시간 단축과 조세제도에 대해선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지방기업을 위해 (기업) 규모에 맞춰 좀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사안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새 정부의 ‘기업 패싱(passing)’ 논란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재인 정부의) 2년 차 성적표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항목은 결국 기업 실적”이라며 “(규제 등의) 조치가 기업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부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경제 전망에 대해선 신중한 의견을 내놓았다. 박 회장은 “지난해 회복의 온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반도체 호황에 편중이 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경제 리스크 요소로 △통상마찰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글로벌 긴축 △중동과 북핵 등 지정학적 리스크 등 3개를 꼽았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박용만#규제#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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