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논단/길진균]친노의 꿈, 이번엔 이뤄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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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논설위원
길진균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찾았다. 6·13 지방선거가 예정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첫 현장방문이 거제라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이념적 지역적 한계 안고 태어난 친노

부산 민주화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친노(친노무현)는 한국 정치에서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였다.

한 동안 한국 정치의 주류는 보수, 진보는 비주류였다. 보수 중에서도 주류는 TK(대구·경북)고 비주류는 PK(부산·경남)였다. 반면 진보의 주류는 호남이고 비주류는 영남이었다.영남 진보인 친노는 한국정치 지형에서 지역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주류와 섞이기 쉽지 않은’ 외톨이였다.

호남 출신의 동교동계와 이들이 발탁한 수도권 86그룹이 양대 축으로 이끌던 진보진영에 어느 날 등장한 인물이 부산 출신의 인권변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완화되는 듯 했던 지역주의는 금방 복원됐고 지금까지 철옹성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역주의’라는 한국 정치 지형을 규정하는 틀이 만들어진 것은 1987년이다. 흔히 ‘87년 체제’라고 한다. 국민 직접 선거에 의한 5년 단임 대통령제, 국회의원 소선구제가 특징이다. 지역주의가 선거 결과로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처음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부터다. 당시까지만 해도 부산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야당세가 강한 곳이었다.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다”며 3당 합당을 결행했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YS의 선택은 동시에 PK의 야성(野性)을 누그러뜨리는 결과도 가져왔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된 1979년 10월 부마항쟁이 발발한 PK 지역은 오랫동안 야도(野都)였지만 YS가 보수여당의 당수가 되고 대통령이 되면서 보수여권에 편입됐다. 이후 20년 넘게 PK 지역은 보수당의 아성처럼 여겨졌다. 현재 한국 정치 지형의 뿌리가 된 ‘87년 체제’의 정초선거(定礎選擧·단순히 일회적 의미를 갖는 선거가 아닌 정치 지형과 사회의 틀을 잡는 선거)는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이었다.

친노, 2020년 총선을 정초선거로

2년 전 까지만 해도 PK는 보수의 텃밭이 분명했다. 하지만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은 보수의 텃밭이었던 PK 지역에 균열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친노 진영은 드디어 PK 지역에서 ‘87년 체제’를 해체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왔다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과 친노 진영은 PK 지방권력 교체야말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어진 필생의 과업인 지역주의 극복과 ‘87년 체제 이전으로의 복귀’를 보여주는 상징적 결과물로 여기고 있다.

“저와 영남 동지들의 원대한 꿈! 오랜 염원! 감히 고백합니다. 영남의 민주주의 역사, 새로 쓰고 싶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정권교체하면, 영남은 1990년 3당 합당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그 자랑스럽고 가슴 벅찼던 민주주의의 성지로 거듭날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5·9 대선 때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영남지역 순회경선 정견발표에서 이 같이 외쳤다. 그리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못 다 이룬 꿈, 제가 다 하겠습니다. 다시는 정권 뺏기지 않고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여기 자랑스러운 후배들이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는 2020년 21대 총선의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특히 친노 진영은 2020년 총선을 ‘87년 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정치 지형의 틀을 짜는 정초선거로 만들기 위한 교두보로 이번 지방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민주 진영이 PK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인위적으로 바뀐 지역 정치를 그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뜻”이라며 “전문가들은 복원까지 한 세대가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다음 총선이 있는 2020년은 3당 합당 이후 딱 한 세대(30년)가 지나는 해”라고 말했다.


친노 vs 홍준표 정치생명 건 한 판 승부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번 PK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낼 것이다. 특히 부산시장과 경남지사 등 광역단체장 후보가 누가 될지는 여권 내 위상이나 친소에 관계없이 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친노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물론 자유한국당이 친노의 이 같은 구상을 모를 리 없다. PK를 빼앗기는 순간 정권탈환은 더욱 힘들어진다. 경남은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텃밭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뿌리인 친노와 한국당, 그리고 홍준표 대표의 정치생명이 걸린 한 판 승부다.

6·13 지방선거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서울이 아니다. PK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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