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일 ‘12·28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관련해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자발적인 조치’를 주문했다. 위안부 합의 파기로 인한 외교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일본에 과거사 문제 해결의 공을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들도 정부의 재협상 불가 원칙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국내외에서 모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앞두고 일찌감치 대일(對日) ‘투 트랙’ 기조를 잡았다.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서는 당장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만큼 일단 이견을 봉인해두고, 한일관계 복원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 북핵으로 동북아 정세가 출렁이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악화가 한미일 공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소식통은 “합의 자체를 부인하는 재협상은 과거사 해결을 위해 한일관계 발전을 희생하는 사실상의 ‘원 트랙’이라 부담스러운 선택지였다”고 토로했다.
위안부 합의 재협상과 파기를 제외하면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어떤 대안을 내놓느냐가 후속조치의 관건이 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위안부 합의 파기와 재협상을 약속했던 만큼 상징적인 조치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일본이 제공한 출연금 10억 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한 결정은 이런 복합적인 고민의 결과물로 나왔다. 합의를 파기하지 않으면서 출연금을 동결시키는 절충안을 찾은 셈이다. 일본이 ‘배상금’ 대신 ‘치유금’ 명목으로 제공한 출연금을 인정하면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강제동원의 정부 책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힌다는 지적이 영향을 미쳤다.
다만 정부는 향후 일본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10억 엔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일본에 반환할 가능성까지 열어둔 셈이다.
정부가 일본에 촉구한 자발적인 후속조치는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 인정과 사과’, ‘명예훼손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이날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일본에 요구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지도자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편지를 쓴다든지 하는 가시적인 조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도 과거사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의 이날 발표 이후 일각에선 정부가 국내 여론과 한일 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안부 합의 절차를 문제 삼아 6개월 넘게 조사했는데 결과적으로 일본에 가시적인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한일 과거사 문제가 재연될 수 있는 불씨만 남겼다는 지적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12월 위안부 합의의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발표한 뒤에도 합의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일부 위안부 피해자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위안부 합의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조용하지만 매서운’ 보복에 나설 수 있다. 일방통행식 위안부 문제 제기로 대북 문제 등 공조까지 힘들어진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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