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겠다고? 강남선 “노무현정부 시즌2” 콧방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3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강남 갑시다” 다시 몰려드는 지방 큰손들
집값 폭주, 강남에 무슨 일이
최강 한파에도 펄펄 끓는 강남, 왜? 자고나면 껑충… 거침없는 상승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아파트 가격표.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아파트 가격표.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경주, 포항 지진이 서울 강남 집값 올렸다.’ 요즘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우스갯소리다. 울산이나 경북 포항시에 살고 있는 돈 있는 사람들이 “지진나면 이사해야 하고, 이사하게 되면 강남으로 가겠다”며 강남을 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엔 ‘서울에 집 사자’며 승합차 타고 올라왔다면 요즘은 ‘강남에 집 사자’ 하고 올라온다”는 얘기도 떠돈다. 노무현 정부 때엔 집값이 서울 전역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올랐지만 지금은 강남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최근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시장의 투자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1일 만난 서초구 잠원동 B부동산의 K 실장(48)은 “최근 한두 달 새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문의가 많다”면서 “(강남 아파트를) 매수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은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기자와 얘기하는 도중에도 그를 찾는 사무실 전화기와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는 “공휴일도 없이 쉬지 않고 일하다 연말연초 딱 이틀 쉬었다. 그런데 그 이틀 새 매매가가 5000만 원 올랐다”면서 “(오름세가)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며칠 전엔 매수자가 가계약금 5000만 원을 걸어놓고 다음 날 계약하기로 했다가, 집 팔려는 사람이 밤새 마음 바꿀지 모른다며 매수자가 밤중에 계약금을 들고 오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나왔던 매물을 거두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전용면적 84m²)가 20억5000만 원에 매물로 나왔다. 열흘쯤 지나 매수 희망자가 생겼다. 하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갔기 때문이다. 이 물건의 중개를 맡았던 반포동 S부동산의 J 대표(66)는 “처음엔 집주인이 빨리 팔아줬으면 하더니 ‘계약하자’는 소리에 물건을 바로 거두면서 호가를 22억 원으로 올렸다”고 귀띔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강남 집값은 거침없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16억9000만 원에 거래된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84m²(전용면적 기준) 아파트가 12월 20억 원을 돌파했다. 현재 21억 원에 호가가 형성됐지만 매물이 사라진 상태. 인근에 위치한 도곡동 도곡렉슬아파트 84m²도 지난해 10월 14억 원대에서 12월 16억 원대로 올랐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의 m²당 평균 매매가는 지난해 12월 11일 1298만 원에서 이달 8일 1341만 원으로 3% 이상 오르며 1300만 원대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부동산114의 주간조사에서도 1월 둘째 주 송파구(1.19%)와 강남구(1.03%)가 모두 1% 이상 올랐다. 2006년 11월 10일 이후 최고치다. 이에 따라 서울 아파트값도 전주보다 0.57% 껑충 뛰었다.

이 같은 상황은 현 정부 출범 직후 어느 정도 예견됐다. ‘강남 집값을 또 올려줄 거다’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돌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각종 부동산 규제로 공급이 줄어들면서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을 밀어올린 학습 경험에 근거한 분석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최근 인근 업소 대표끼리 모인 자리에서 요즘 상황을 두고 ‘노무현 정부 시즌2’라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시즌2라는 뜻은 당시와 패턴은 비슷하지만 몰아치는 행태가 더 심각하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강남 아파트가 ‘부동산 명품’으로 인정받은 지는 오래됐다.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 인프라에 교육특구로 불릴 정도로 교육환경이 좋아서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강남 부동산 가격을 자극한 것은 현 정부다. 우선 다주택자를 타깃으로 하는 각종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이 도화선이 됐다. 다주택자들이 여러 채를 팔고 한 채만 남긴다면서 강남 아파트에 몰리는 상황이 조성됐다. 이른바 ‘똑똑한 한 채’ 갖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연구위원은 “지방 자산가들까지도 가지고 있는 자산을 현금화해 강남 아파트를 사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전했다.

올해 말부터 시행될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양질의 교육환경을 찾는 학부모들이 일제히 강남지역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사고와 외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으로 강남 이외 지역에 거주하며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심리적 안전판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자사고는 강남 쏠림을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정책이다”라며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기화되고 있는 저금리와 증시 호황, 가상통화 시장 활황 등으로 풍부해진 유동성도 불붙은 강남 부동산 시장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실탄’을 확보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강남 부동산에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2522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수서발 고속철도(SRT) 개통,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설 추진 등과 같은 잇따른 대형 개발 호재도 투자자들의 발걸음을 강남으로 이끌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강남 3구에는 대기업 본사를 포함해 일자리 150만 개가 밀집해 있고, 양질의 주거시설과 좋은 학군, 교통여건 등도 국내 최고 수준”이라며 “이런 조건을 갖춘 신도시가 나오기 전까지 강남 수요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주택매매수급지수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강남 4구의 수급지수는 116.7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2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전달보다 9.3포인트 올랐다. 올해에도 121.1(1일·조사 기준 시점), 122.5(8일)로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 숫자는 100보다 클수록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의 입주물량은 전년(6200여 채)보다 30% 줄어든 4300여 채에 불과했다. 최근 5년 새 가장 적은 물량이었다. 올해 입주물량은 1만5500여 채로 크게 늘지만 2019년에 다시 4800여 채 수준으로 쪼그라든다.

전문가들은 강남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선 공급 확대와 수요 분산 방안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서울에서 새 아파트가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며 “고밀도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토지이용 규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미윤 LH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남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지는 재건축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만큼 순차적으로 이뤄지도록 속도 조절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경기도 성남 하남 과천 등지의 그린벨트를 풀어서 택지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김학렬 소장은 “강남지역에 본사를 둔 대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줘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황재성 jsonhng@donga.com·김지영·강성휘 기자
#집값#강남#아파트#부동산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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