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이 지난해 검찰에 넘긴 대북 관련 공안사건이 한 건도 없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보통 국정원이 수사를 마무리해 검찰에 넘겨야 공안사범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데 1년 동안 이 같은 절차가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61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창설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에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방안이 확정됨에 따라 앞으로 입법과 준비 과정을 감안하면 대공수사 공백이 더욱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그동안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이나 북한 지령을 받고 국내외에서 이적 활동을 하는 공작원 등을 직접 수사해 검찰로 넘겼다. 국가 기밀을 북한에 누설하거나 국가 주요 시설을 노리는 등 국가보안법 4조(목적수행)를 위반한 공안사범을 수사하는 것도 대공수사국의 역할이었다. 수사가 마무리되면 국정원은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지검 수원지검 등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국정원이 작년 한 해 동안 검찰에 넘긴 사건이 한 건도 없다는 건 취약해진 안보수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7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사실상 대북 공안수사에서 손을 놓았다고 한다.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나서면서 국정원 직원들이 대거 검찰 수사를 받자 대공수사는 더욱 위축됐다. 대공수사국 핵심 인력들이 6월 출범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팀’으로 상당수 투입된 점도 수사력 약화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다. ‘적폐청산 TF’가 지난해 11월까지 운영됐고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대공수사는 사실상 ‘올스톱’ 됐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베테랑 수사관들은 대북 공안 사건을 수사하려는 의욕을 계속 보였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국정원 내 고위 간부들 사이에 대공수사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공수사 공백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국정원 대공수사는 지난해보다 올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청와대는 14일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등 권력기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국정원 대공수사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대공수사국 요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말 한마디로 법에 규정된 고유 업무인 대공수사를 못 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완전히 넘기기 위해선 국가정보원법 개정 등 여러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시행 등 민감한 사안과 묶여 국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야 한다. 여야 간 극명한 입장 차로 실제 입법이 이뤄지려면 향후 최소 1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간 국정원과 경찰 모두 대북 공안수사 주도권을 갖지 못하면서 안보 공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대공수사권 이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국정원은 수사 동력이 없고 경찰은 국정원 인력과 시스템을 인계받지 못한 상태라 누구도 대공수사의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대공수사 기반과 네트워크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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