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올 때마다 큰 화제가 됐던 북한 ‘미녀 응원단’이 13년 만에 다시 남쪽에 내려온다. 단원 선발 방식과 기준 등 북한 응원단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본다.》
북한이 17일 평창 겨울올림픽에 응원단 230명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올 때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던 북한 ‘미녀응원단’이 13년 만에 다시 남한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응원단 수로만 보면 역대 최대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술단 140명까지 포함하면 응원 및 공연을 위해 370명이나 내려오는 경우는 분명 전례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북한 응원단이 온 사례는 과거 세 차례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때 288명,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때 306명,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때 125명이 왔다. 인천에는 “10초 남짓이면 끝나는 육상 종목에 응원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이유로 ‘청년학생협력단’이란 이름으로 보냈다. 금성학원 여학생 위주로 선발된 단원들 속에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응원단이 와도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은 별로 없다. 북한 응원단이 자국 선수를 응원할 일이 거의 없는 셈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말한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외국 선수들과 싸우는 한국 선수들을 응원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파견할 응원단은 지금쯤 평양에서 공동 숙식을 하며 맹훈련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이미 몇 달 전에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워 놓고 있었다. 그때부터 응원단을 선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미녀응원단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며 어떤 훈련을 받는 걸까. 평양에서 예술 관련 대학에 다니며 응원단 선발 과정을 지켜본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그 베일을 벗겨 본다.
○ “잘 먹었단 걸 보여줘”
북한에서 응원단에 뽑히려면 미모와 몸매, 출신 성분, 충성심 등 다양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북한이 2000년대 초반에 제일 중시한 기준은 키였다. 기준은 165cm. 미모가 뛰어나면 키가 약간 작아도 선발될 수 있었지만 160cm 이하면 무조건 탈락됐다고 한다.
키를 중시한 이유도 흥미롭다. 2000년 초중반 평양에서 예술대학을 나온 한 탈북 여성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대기근에서 막 벗어난 때라 못 먹어 키들이 작다는 비난을 가장 의식한 듯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 식량 사정이 안정되면서 이제는 평양 여대생들의 평균 키가 많이 커졌다고 한다.
가족 중에 행방불명자나 해외 친척이 있으면 도주 우려 때문에 선발될 수 없다. 그러나 응원단은 보위원의 상시 감시하에 있기 때문에 출신 성분 기준이 크게 높지는 않았다고 한다.
과거 북한은 응원단을 평양 여대생 중에서 선발했다. 예술인을 양성하는 평양 영화연극대학이나 음악무용대학, 금성학원을 중심으로 선발한 뒤 그 수가 모자라면 다른 대학이나 예술단에서 추가로 보충하는 식이다. 예술 계통 대학에 이미 전국의 미인들을 선발해 왔기 때문에 굳이 지방에서까지 모집할 필요는 없었다고 한다.
모집 담당은 노동당 중앙당 간부과와 청년사업부, 대남기관인 통일전선부 등이 합동으로 진행한다. 출신 성분이나 충성심 등은 당에서 검증하고, 남쪽에서 ‘잘 먹힐’ 미모인지는 통일전선부가 판단하는 식이다.
북한은 응원단 모집령이 떨어지면 기준에 맞는 여성을 빠른 시일 안에 선발할 수 있다. 북한은 대학 때부터 학생을 ‘간부 사업 대상’으로 관리한다. 가령 예술대학에 다닐 때 미모와 기량이 뛰어난 학생들을 ‘모란봉악단 등 중앙급 예술단에 갈 수 있는 재원’, ‘영화배우로 키울 수 있는 재원’ 등으로 점찍어 놓고 대학 기간 꾸준히 관찰한다.
○ “딸아, 별나라 구경해 봐”
2000년대 중반 북한에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물밀 듯이 들어가면서 많은 여학생들이 한류에 매혹됐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응원단 모집 때엔 너도나도 남쪽 구경을 가고 싶어 해 경쟁이 과열됐다. 부모들까지 합세해 선발 담당자들에게 뇌물 공세를 벌였는데, 1000∼3000달러 정도가 오갔다고 한다. 당시 3000달러면 쌀 4t을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한 탈북민은 “중국에 가는 것은 촌에 가는 것이고, 남조선에 가는 것은 별나라에 간다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외국에 나가기 힘든 북한에서 남쪽에 응원단으로 간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자 국가대표 미녀로 인정받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스펙’을 가지면 결혼할 때 매우 유리하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불거졌다. 한 고위급 탈북자는 김원홍 당시 국가안전보위부장이 응원단 선발 비리를 김정은에게 보고했고, 김정은이 “지랄발광들 하는군. 역시 믿을 건 보위부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북한은 인천에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먼저 말했다가 한 달 만에 “남측이 응원단에 시비를 걸기 때문에 보낼 수 없다”며 약속을 뒤집었다. 응원단 선발이 너무 과열돼 이대로 보낼 순 없다고 판단했던 이유도 적잖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응원단 파견이 취소되자 뽑히지 못했던 여대생들이 크게 환호했다는 증언들도 있다.
이번에도 선발 과정에 권력과 인맥, 뇌물이 오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평범해 보이는 응원단원일수록 고위 간부나 부자의 딸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 “남쪽에서 잘 먹힐 미모를 찾아라”
북한 미녀 응원단이 올 때마다 깜짝 스타가 탄생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당시 응원단장 격인 이유경, 최연소 응원단 채봉이, 빼어난 미모의 황윤미 등은 온라인 팬클럽이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북녀 신드롬’의 원조는 부산 아시아경기보다 한 달 앞선 8·15 남북통일대회 때 왔던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조명애였다. 그는 나중에 인기가수 이효리와 광고까지 찍었다.
이때부터 대남 담당 부서가 ‘남쪽에서 잘 먹히는 미모’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수대예술단이 원래 미모의 여성을 골라 뽑는 특급 예술단체이긴 하지만, 북한 기준에서 볼 때는 조명애가 특별히 더 미모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여러 탈북민들도 계란형 얼굴을 선호하는 북한에선 서구형 얼굴인 조명애의 미모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고 동의했다. 이어 이유경, 황윤미가 한국 젊은이들의 관심을 받자 대남 부서도 남쪽의 미인상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응원단 선발에 있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여성이 내려가야 남쪽에서 화제가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역대 응원단원 중 최고 화제의 인물은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인기를 모은 리설주다. 어쩌면 한국에서 얻은 인기가 그를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리설주는 2003년 3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청소년적십자 우정의 나무심기’ 행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보였다. 당시 14세였던 리설주의 미모가 남쪽 사람들의 관심을 받자 북한은 그를 이듬해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교사 회담 때에는 팻말을 들고 선두에서 입장하게 했다.
이어 2005년 인천에도 리설주를 응원단의 앞에 내세웠다. 이렇게 남쪽에서 리설주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김정은의 눈에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남쪽의 인기가 없었다면 비행사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를 둔 지방의 평범한 집안 출신 리설주가 과연 내로라하는 간부집 자녀들을 제치고 북한의 스타 가수로 뜰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 응원단은 늘 ‘남남북녀’란 단어와 연관되지만, 많은 탈북 여성들은 지금은 남쪽 여성이 훨씬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북한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영양 공급이 부족해 충분히 키가 크지 못하고, 야외 활동이 많아 피부도 거칠며, 미모를 가꿀 시간도 별로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성형 기술의 차이다.
성형이 원초적 단계인 북한에선 일반인은 쌍꺼풀 수술 정도만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성형외과에서 하는 복잡한 수술들은 북한에선 몇 군데 중앙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요즘 북한 여성들이 제일 하고 싶은 수술은 라식수술이라고 한다. 안경을 쓴 여성은 인기가 없기 때문에 해외식당 등에 파견되면 라식수술부터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이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2005년 한국에서 건설해준 평양 낙랑구역 안과병원 한 곳뿐이다. 그곳도 정교한 안과용 수술칼이 없어 해외에서 이를 사온 여성에게만 해준다고 한다.
○ “적구에 파견된 정치공작대”
응원단에 뽑힌 여성들은 합숙생활을 하며 오전에는 응원구호나 노래, 율동 등을 일사불란하게 맞추는 훈련을 한다. 단원 대다수가 예술계통 종사자인 데다 평양에서 살면 ‘충성의 노래경연’이나 ‘아리랑 집단체조’ 등에 자주 동원되는 까닭에 이 훈련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후에는 몸가짐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와 남쪽에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선 어떻게 하는지 등 정치사상 관련 훈련을 받는다.
남쪽 기자나 민간인이 질문할 때를 대비한 모범답안도 잘 외워야 한다. 북한은 과거 이들에게 “동무들은 남조선과 전 세계에 공화국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적구(적이 관할하는 지역)에 파견되는 정치공작대원”이라고 주입했다고 한다. 응원단원들은 한국에 오면 ‘대열인솔자’ ‘생활지도원’ 등으로 신분을 위장한 보위원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정을 자세히 적어 보고하고 밤마다 생활총화를 한다.
북한 응원단을 떠올리면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김정일 사진이 인쇄된 플래카드가 비를 맞는다고 울며 항의하던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공작대원이라는 최면에 빠져 있고, 서로를 예민하게 감시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니 과잉 충성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미녀응원단에 열광하던 남쪽의 민심을 일순간에 부정적으로 바꿔버렸다. 하지만 정작 북에 돌아간 이들은 “적구에서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 발휘하는 귀감이 됐다”며 칭찬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사건의 부정적 영향을 절실히 느꼈을 대남 담당 간부들도 “다음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북한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응원단은 또 어떤 일화들을 남길 것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