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1시 2분 서울고법 형사3부 조영철 부장판사가 판결 주문을 읽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312호 중법정 피고인석에 서서 항소심 선고를 듣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2)은 공손하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재판부를 가만히 응시했다. 조 부장판사가 “피고인 조윤선은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말하자 4초간 머뭇거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전 11시 5분 선고가 끝나자 조 전 장관은 검은색 코트와 클러치백을 챙긴 뒤 법정 경위를 따라 법정을 나섰다. 방청석에서 한 젊은 여성이 “조윤선 장관님,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돌아보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법정을 나섰다. 호송차를 타고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 180일 만에 ‘법정 구속’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축소했다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실행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월 21일 구속 기소된 조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27일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것. 하지만 이날 징역 2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180일 만에 다시 수감됐다.
앞서 오전 10시 5분 조 전 장관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법원에 도착했다. 옅게 화장을 한 얼굴이었다. ‘이번에 구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피고인 중 가장 먼저 법정에 도착한 조 전 장관은 하늘색 수의를 입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9·구속 기소)이 법정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10시 30분 재판이 시작된 후 35분간 조 전 장관은 피고인석에 꼿꼿이 앉아 재판부만 바라봤다.
조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조 전 장관이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고 문예기금과 영화, 도서 지원 배제에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박준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65)이 항소심에서 증언을 번복한 점이 조 전 장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박 전 수석은 1심 재판에서 조 전 장관이 ‘민간단체 보조금 태스크포스(TF)’에 개입했는지를 검찰이 묻자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항소심에선 “조 전 수석에게 TF 인수인계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서 발견된 이른바 ‘캐비닛 문건’이 항소심에서 증거로 채택된 점도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
○ 박근혜 전 대통령 공모 관계도 인정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은 김 전 실장에 대해 문체부 1급 공무원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를 추가로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은 지원 배제 실행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되는 전직 장관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이유로 (1급 공무원에게) 사직 요구를 자의적으로 하는 등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또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김 전 실장과 박 전 대통령(66·구속 기소) 간의 ‘공모 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자신의 직권을 남용했고, 동시에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행위에 공모한 것이므로 그에 관한 공모공동정범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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