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무직 직원 A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주당 최소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자율출근 중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9시간씩 근무하고 금요일은 오전에만 4시간 일한 뒤 오후에는 주말을 붙여 해외여행을 떠나곤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사팀에서 처음 근로시간 단축을 시범 운영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과연 누가 진짜 그렇게 하겠느냐’는 말이 많았는데 막상 시행해 보니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금방 제도가 자리 잡았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도 다음 달부터 근로시간 단축 ‘리허설’에 나선다. 법이 개정되면 직원 300명이 넘는 대기업은 당장 올해 7월부터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SK하이닉스는 23일부터 기술 사무직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근무시간 단축 방안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있다. 하루 최소 4시간 이상 근무하는 조건으로 1주일에 최소 40시간, 최대 52시간만 근무하라는 방침이다. 앞으로 이어질 약 5개월의 시범운영 기간에 회사는 임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직접 점검한다. 주당 52시간이 넘는 경우에는 해당 부서장과 임직원에게 해결 방안을 요청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부터 각 사업부문 책임자들에게 주당 근무시간이 52시간을 넘는 직원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올 초에는 제도를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각 부서 그룹장과 선임 부장 등 리더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진행했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정보기술(IT) 업종인 만큼 직원들의 근무시간은 줄이되 업무 몰입도는 지켜내야 하는 게 최대 고민이다. 흐름이 깨져 정작 중요한 개발 시점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두 회사 모두 유연근무제와 자율출근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개발 조직에서만 시행하던 유연근무제를 3월부터 전사로 확대한다. 근무시간을 모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게 아니라 각자 사내 시스템에 입력한 대로 다르게 적용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게 아닌 만큼 사내 온라인 시스템을 개편해 실제 근무시간을 직원들이 직접 입력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역시 이전까진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공제하던 점심시간(1시간) 등을 앞으로는 개개인이 스스로 원하는 만큼만 쓰고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출근 시간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인 개발 부서는 여전히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프로젝트 중에는 밤샘근무를 이어가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여유를 갖고 쉬는 업무 패턴이기 때문에 근무시간을 계산하는 단위를 지금의 주(週) 단위에서 월(月) 또는 연(年)으로 바꿔야 제조업 근무 사이클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갤럭시S9’ 개발팀의 경우 제품 공개를 한 달여 앞두고 지금 막바지 밤샘근무가 한창일 수밖에 없다. 1∼2월에는 주 60시간을 일하는 것을 허용하되 3∼4월에는 40시간만 근무하게 하면 연평균으로는 주당 52시간을 맞출 수 있다.
중공업이나 건설 등 수주업 역시 수주 타이밍에 따라 일감이 몰리기 때문에 탄력적 적용이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근로시간 단축은 결국 사람을 더 뽑으란 얘기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장기적으로는 고용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생산직의 경우 라인 가동시간에 맞춰 주당 52시간 근무를 적용하기 쉽지만 사무직은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