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이어 실손보험까지… 금융당국 ‘가격 개입’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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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압박에 금융권 속앓이
ATM 수수료 면제대상 확대 추진… 7월 소액결제 카드 수수료 내려
상반기 실손보험료 인하도 예고
“제도 개선보다 표심 겨냥한 행보… 금융권 자율성 지나친 침해” 지적

현 정부 들어 금융당국의 ‘금융시장 가격 개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실손보험료를 시작으로 신용카드 및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 대출금리까지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으로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서민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 기조에 발맞추고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4일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을 위한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3월부터 은행 ATM 수수료 면제 대상을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새희망홀씨 같은 정책서민상품 가입자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ATM 수수료의 57.4%를 소득 하위 20%가 내고 있다”며 “은행들과 협의해 면제 범위를 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면제 범위 확대 수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미 ATM 사업에서 적자를 보고 있지만 당국의 인하 방침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한 해에만 전국 ATM이 2641개(5.2%) 감소한 상황에서 적자폭이 확대되면 은행들이 ATM을 더 줄이게 되고 결국 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우선 금융위는 7월 신용카드 원가의 한 항목인 밴(VAN) 수수료 체계를 손질한다. 이를 통해 평균 결제금액이 5만 원 이하인 소액결제업종 가맹점 약 10만 곳의 수수료 부담을 평균 0.3%포인트(연간 270만 원) 낮출 계획이다.

금융위는 카드사들이 결제금액이 큰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를 올려 손실을 메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카드업계는 “대형 가맹점은 수수료 협상에서 카드사보다 ‘갑’의 위치에 있는 곳이 많아 수수료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그동안 카드 수수료가 계속 인하돼도 그나마 금리가 낮아 버텨왔지만 이제는 금리마저 오르고 있어 카드 서비스를 줄이거나 고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에도 제동을 걸었다. 신한은행이 예금금리가 올라 비용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주택담보대출의 가산금리를 0.05%포인트 올리자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나서 “기본금리(기준금리)가 오르면 모르지만 수신금리를 올렸다고 가산금리를 올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신한은행은 이달 초 가산금리 인상을 취소했다.

금융위는 또 상반기(1∼6월)에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의 일환으로 실손보험료 개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에서는 “아직 문재인 케어를 시행해 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하는 보험금 비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미리 보험료를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해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130% 수준이다.

정부가 금융권의 가격 책정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당장 ‘표심’을 의식해 가격 내리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는 가격 자체에 개입하지 말고 금융회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거나 특정 분야로 자금이 쏠리진 않는지 조정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금융#실손보험료#신용카드#수수료#a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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