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3차 조사 예고… 암호파일 열어볼듯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관련 사과

김명수 대법원장(59·사법연수원 15기)이 24일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로 드러난 과거 법원행정처의 판사 동향 파악 등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리고 사실상 ‘3차 조사’ 방침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발표한 대국민·법원 내부용 입장문에서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른 합당한 후속 조치를 하겠다”며 “이를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조사 결과를 보완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조치 방향을 논의해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했다. ‘필요한 범위’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보완’하겠다고 밝혀 3차 추가 조사를 예고한 것이다.

○ 3차 조사에서 암호 파일 조사할 듯

3차 조사를 위한 기구가 꾸려지면 지난해 4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70·2기)이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와 김 대법원장의 지시로 만들어진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에 이어 세 번째 조사를 맡게 된다. 3차 조사가 이뤄진다면 추가조사위가 하지 못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16기)의 PC 및 열지 않은 암호 파일 460개와 임 전 차장 등을 직접 조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임 전 차장 조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원칙적으로 기구에서 얘기할 내용이지만 그와 관련해서는 내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암호 파일 조사가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선 “나중에 기구와 긴밀히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구성될 조사 기구에 미루는 말이었지만 보완 조사가 추가로 될 것이란 뉘앙스였다.

김 대법원장의 3차 조사 언급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의도라고 법조계에서는 분석한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 법관들과, 김 대법원장을 비롯한 추가 조사위원들에 대한 고발을 접수해 놓은 상태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전현직 대법원장 관련 고발 사건을 형사1부에서 공공형사수사부로 재배당했다”며 “본격적인 수사 착수는 아니며 향후 관련 사건의 진행 추이를 지켜보면서 수사 진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판사 인적 쇄신, 법원행정처 대수술 카드


김 대법원장은 22일 발표된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 “이번 일이 재판과 사법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무너뜨리고 있음을 직시하고 있다”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준 것에 대법원장으로서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참담한 심경을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은 “우리는 매우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두려움에 일단 눈을 감자는 목소리도 있을 수 있으나 상황을 직시하고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의 잘못이 우리의 미래를 잠식하고 변질시킬 것”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인적 쇄신과 법원행정처 개편 등 고강도 조치에 나설 뜻을 밝혔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인적 쇄신 조치를 단행하고 법원행정처의 조직 개편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법관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중립적인 기구의 설치를 검토하는 것과 함께 기존 법원행정처의 대외 업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법원행정처의 상근 판사를 축소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치들은 추가조사위 발표 이후 법관들의 법원행정처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 보고서에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 항소심 재판 당시 법원행정처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19기) 등 청와대 측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재판부 동향 등을 전달한 내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원세훈 관련 발표는 평판사들도 심각성을 느끼고 고민하던 부분이다. 사법부의 독립성, 국민의 신뢰에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날 성금석 창원지법 부장판사(49·25기)는 원 전 원장의 정치 개입 1심 판결과 관련해 비판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가 징계를 받은 김동진 인천지법 부장판사(49·25기)에 대한 당시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 “갈등 장기화 우려” vs “조치 환영”

3차 조사 여부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장기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기구를 자꾸 만드는 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공정한 외관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긴 하는데 그것 때문에 법관들이 단합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은 법원 내부 갈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아도 내심 좋아했을 것”이라며 “검찰 수사까지 가지 않으려는 대법원장의 뜻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권오혁·이호재 기자
#김명수#블랙리스트#사법부#암호파일#3차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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