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 지시]국회 논의 한달 넘도록 진척 없자 “정책기획위가 맡아라” 직접 나서
재적의원 3분의2이상 찬성 필요… 대통령 발의해도 국회 통과 난망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대통령 개헌안 발의 준비를 지시한 것은 “국회가 개헌에 나서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겠다”는 정치적 압박으로 볼 수 있다. 국회 개헌 논의가 “아직도 원칙과 방향만 있고 구체적 진전이 없어서 안타깝다”며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론에 불을 지피겠다는 것이다.
6월 개헌 투표가 실시되려면 3월 중순까지는 국회 개헌안 또는 대통령 개헌안이 마련돼야 한다. 개헌안 발의, 공고, 의결 등의 법적 절차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개헌 선언’으로 향후 정국은 개헌 이슈로 뒤덮일 공산이 커졌다.
○ 文, “정책기획위가 개헌 맡아라” 지시
당초 이날 수석·보좌관회의 안건은 평창 겨울올림픽 준비 상황 점검 하나뿐이었다. 문 대통령이 안건에 없었던 개헌을 강하게 언급한 것은 더 이상 국회 논의만을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회 개헌특위 논의가 2월 정도 합의를 통해 3월쯤 발의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국회 논의를 지켜보면서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한 달여가 지나도록 국회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없다고 본 것.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인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평창 올림픽과 북핵 문제 등 현안이 있지만, 개헌은 시간표가 정해진 이슈라 다른 현안을 이유로 무작정 방치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 개헌안까지 준비할 만큼 개헌에 강한 의지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정책기획위원회에 대통령 개헌안 마련 작업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6월 개헌 투표 추진이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 靑, “권력구조 개편 없어도 개헌”
대통령 개헌안에 담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청와대는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가장 민감한 권력구조 개편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개헌안에 포함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대신 청와대는 기본권, 자치 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은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분야이자, 여야 이견이 상대적으로 덜한 지점이라 ‘핀셋 개헌’이 가능하기 때문.
여권의 한 친문(친문재인) 핵심 인사는 “행정권, 예산권을 과감하게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자치 분권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문 대통령이 갖고 있던 소신”이라며 “대선 때 모든 후보들이 개헌을 약속한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면 개헌이 힘들어진다는 판단을 문 대통령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핀셋 개헌’으로 야당의 반개헌 공세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 투표까지는 산 넘어 산
문제는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해도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석수(121석)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민주평화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체인 미래당, 자유한국당의 일부 협조까지 있어야 가능한 것. 이 때문에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더라도 6월 투표는 무산되고 개헌 무산을 놓고 무한 정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한국당은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지지율 급락에 초조한 문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는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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