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방남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지난해까지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활동하며 북한의 언론스타일을 바꾸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북한의 언론이 두드러지게 변한 것은 김여정이 선전성동부로 두각을 드러낸 2015년 부터다. 그해 8월 25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남북고위급접촉’ 합의문 브리핑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관영언론뿐인 북한에서 경쟁적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은 누가 봐도 불필요한 일. 이 전까지 북한 방송에서 남북 간 협의 결과는 통상 아나운서의 낭독으로 발표했었다. 이에 남측이나 서방의 기자회견을 흉내 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같은 달 북한 언론은 평양에서 열린 유럽의 유명 록밴드 라이바흐(Laibach) 공연을 보도했는데, 서방의 상업 록밴드가 북한에서 공연을 가진 것은 이때가 최초였을 뿐 아니라, 언론까지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전례없던 일이었다.
이 무렵 매일 저녁 조선중앙TV에서는 북한의 4대 일간지인 ‘노동신문’ ‘민주조선’, ‘청년전위’, ‘평양신문’의 주요 기사를 하나하나 소개했다. 남한과 서방 국가의 아침 방송과 유사한 포맷이었다. 당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판문점 회담에서 “남조선 종편은 너무 노골적이다. 거 좀 살살하라”고 말한 바 있는데, 주요 고위급들이 우리 언론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 언론이 김정일(1942~2011)시대와 달리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노출 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 관영언론에 ‘비판 기사’가 등장한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같은 해 4월 조선중앙TV에서 산림복구 사업과 관련해 황해북도 지방 간부들을 거칠게 질책하는 내레이션이 전파를 탄 것이 대표적이다. 최고지도자의 발언을 옮기는 형식이 아닌, 아나운서가 간부를 직접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북한 언론이 비판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됐다.
신문이 전 지면을 컬러로 인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다.
당시 북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북한 언론의 변화 배후에는 김여정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인 마이클 메이든은 “근래 들어 북한 언론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고 말했고, 국내 한 안보부처 관계자는 “김여정을 철딱서니 없는 아가씨로만 생각했는데, 그리 간단한 인물이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북한 외부에 가장 깊이 각인된 김여정의 초반 모습은 2012년 7월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식을 시찰하는 오빠 뒤에서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유분방한 성격과 오랜 서방 유학 경험이 언론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셈이다.
한편, 김여정은 9일 오후 1시 47분 께 전용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교적 옅은 화장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김여정은 조명균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영접 인사들을 만나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날 CNN은 소식통을 인용,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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