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한 데 대해 “완전한 양동(陽動)작전”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방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10일 기자들에게 “북한의 핵미사일 정책이 바뀌는 것이 (방북의) 대전제”라며 “핵미사일 개발 포기를 끄집어내지 못하는 한 방북하면 안 된다고 한국에 강하게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1일 아사히신문은 이 같은 시각이 일본 정부만의 것이 아니라 미국과 공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9일 평창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 직후 미국 측 요청으로 급히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만났으며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이 주최하는 리셉션 장소로 가는 자신의 차에 아베 총리를 태우고 향후 대책을 협의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이 이상 북한에 경도되지 않도록 미국과 일본이 연대해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고립이 심해진 북한이 유화 공세를 펴는 의도는 미국 측에서 한국을 떼어내 자국에 대한 포위망을 붕괴하려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에게 ‘조기에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신문은 “정상회담은 미국 등과 조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 효과를 손상하는 행동은 철저히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한반도 비핵화로 연결되지 않는 회담은 의미가 없다. 북-미 대화 중개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는 문 대통령의 태도에서 위험함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는 10일 브리핑에서 전날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를 요구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은 “아베 총리가 ‘올림픽 이후가 고비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이에 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우리의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다. (아베) 총리께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 내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에 편승해 한국을 압박하면서 동북아 내 군사적 영향력 확대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 받은 정부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나 재연기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 아베 총리의 발언에 공개 반박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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