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2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북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간의 비밀 회동이 당일 북측의 취소로 불발된 것과 관련, “9일 펜스 부통령이 보인 행보에 대해 북한이 굉장히 불안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지난 9일 평창 용평리조트에 마련된 리셉션장에서 펜스 부통령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악수를 나누지 않았던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이 같이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 내외, 김 상임위원장 등과 같은 테이블에 앉을 예정이었지만, 펜스 부통령은 리셉션장에 잠시 들러 김 상임위원장을 제외한 정상급 인사들과 악수를 나눈 뒤 자리를 떴다.
정 전 장관은 당시 자신도 리셉션장에 있었다며 “김 상임위원장과는 안면이 있고 저보다 17세나 많은 분이다. 이번이 세 번째 보는 거라서 가서 아는 척을 했는데 음식을 열심히 들고 계시다가 고개를 드는데 얼굴이 벌게져 있더라”며 “그 테이블에 펜스는 없었다. 그러니까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같은 날 밤 진행된 개막식 행사를 언급하며 “개막식장에서 펜스 부통령이 고개만 돌리면 뒷줄에 앉아 있는 김여정과 눈이 마주칠 수 있게 각도가 그렇게 잡혀 있었다. (펜스 부통령이) 거기에서 눈도 안 마주치는 걸 보고 아마 김여정도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 전 장관은 “그렇게 되면 아마 평양에 보고했을 거다. 이런 결정은 여기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위임에 의해 결정할 수 없다. 평양에 보고해 김정은의 최종 결정을 받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그게 아마 2시간 전에 북쪽 대표단들한테 통보가 됐을 것”이라며 “펜스 부통령의 개막식 직전, 현장에서의 여러 가지 행동거지 등을 보고 ‘이거 만나봐야 싫은 소리만 듣고 혼만 나겠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회동을 취소한 것 같다)”고 전했다.
펜스 부통령이 당시 싸늘한 대북 스탠스를 취한 이유에 대해선 “미국 내 정치적인 요소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펜스 부통령은 어떤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은 강경파”라며 “미국의 자기 지지층에 대해 ‘내가 이렇게 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좀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기간 ‘김여정을 만나려 했다’는 사실을 열흘이나 지나 공개한 배경에 대해선 “정치적 입지 때문”이라며 “면피용 언론 플레이”라고 추측했다.
정 전 장관은 “(펜스 부통령이)북한 대표단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리셉션장에)늦게 갔다가 5분 만에 나왔다, 테이블에 마주보고 있는 김영남과도 인사도 안 했다는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 여론이 안 좋았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며 “세계 최강국의 부통령이 속 좁게 그러면 되겠는가? 등의 비판이 나오니까 일종의 면피용으로 ‘내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백악관 고문의 방한 후 외교부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미국에 보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그보다 높은 급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이것은 미국의 대통령이 결정해야 될 문제다. 실무자들이 계단 밟아서 분석하고 계단 밟아서 보고하는 동안에 시간은 다 가버린다”며 “최소한 안보실장이 직접 가서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직접 담판을 해 ‘미국이 태도를 좀 바꿔 달라. 그러면 우리가 북한을 다시 회담장으로 끌어내겠다’ 이런 위임을 받아와야 된다. 계단 개수가 많지 않은 그런 협상을 시작해야지 40계단 밑에 있는 사람이 가서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펜스 부통령과 같은 (강경파의)입장을 미국이 조금 누그러뜨려줘야 한다”며 “그래야 북한도 비핵화에 대해서 전향적인 얘기를 할 수 있다. 양쪽이 장외에서 기싸움을 하고 있는데, ‘미국이 태도를 조금만 누그러뜨려주면 우리가 남북 대화 채널을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할 테니까 이걸 위임을 해 달라’고 얘기하려면 높은 사람이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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