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21> 평양 과기대의 속살을 듣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6일 18시 13분


평양에는 한국과 북한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2002년 남북한 간에 설립에 합의한 뒤에도 2010년 개교할 때까지 8년이 걸릴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아직 한 번도 문을 닫지는 않고 지속되고 있다.

당초 설립할 때는 한국 대학의 교수들이 평양에서 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수도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됐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약 70여명의 교수진은 미국과 유럽 각 국 국적의 대부분 크리스천 교수들이 ‘자원 봉사’하듯이 강의하고 있다.

평양과기대는 한국과 북한 당국의 합의로 설립됐지만 김진경 설립 총장은 중국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의 연변과학기술대학의 총장이기도 했다. 평양과기대를 드나드는 서방의 교수진은 모두 중국을 경유해 드나들고 교수진의 일부는 연변과기대 출신이기도 하다. 평양 과기대가 사실상 한국 북한 중국의 협력하에 설립 운영되는 특수 대학임을 보여준다.

23일 강남구 테헤란로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는 지난해 3월 김진경 설립 총장에 이어 외방(外方)측 2대 총장에 임명된 전유택 총장의 특강이 있었다. 과거 7년 가량 평양과기대에서 강의를 했었던 전 총장은 “총장 취임 후 아직 학교에 가보지 못했고 언제 들어갈 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약 200여명의 청중들에게 평양 과기대를 소개했다. 전 총장은 10살 때까지 평양에서 살다가 내려온 실향민 가정 출신이기도 하다.

특강 후에는 특강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와 한국고등교육재단 박인국 사무총장 등 재단 관계자 등과 저녁을 함께 하며 과기대 및 평양 생활에서 느낀 점을 전했다.

평양과기대에는 북한의 김일성대나 김책공대 등 평양과 지방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선발되어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학생 선발은 전적으로 북한 당국이 맡고 있다. 국제금융 경영학 등 문과와 농생명 공학 등 이공계에 현재는 학부생 450명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100 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학부생 400명과 대학원생 120명을 배출했다.

전 총장은 “평양과기대는 북한내의 유일한 국제대학으로 모든 강의는 영어로 진행하며 세계 각 국에서 온 교수진 70여명이 있다”며 “북한내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 경제를 강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전 총장은 “입학생의 60%는 평양, 나머지는 지방 출신인데 평양 출신이 더 개방적”이라며 “지방 출신이 더 오래 동안 외부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입생 중에는 외국 교수들에게 정치적인 성향을 떠보고 체제를 선전하려는 학생들이 있는데 걸려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며 오히려 학교측에 학생들을 주의시키라고 요구하기도 전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외국인 교수들과 영어로 강의듣는 곳이어서 학생들은 외국에 유학 온 분위기를 나타낸다고 소개했다. ‘100% 영어로 수업한다’는 말은 맞지만 수업 시간 외에는 ‘서로 답답하기 때문에’ 한국말 조선말로 대화하기도 한다고 했다. 북한에서 강의하는 교수들 중 절반 가량은 미국 국적이나 중국 국적의 조선족 등이어서 영어보다는 한국어(조선어)로 대화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2015년부터 남녀 공학으로 전환해 현재는 약 50명 가량의 여학생이 있는데 이때부터 남학생들이 세수도 잘하고 옷 입는 것도 신경을 쓰는 것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평양도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북한 교수들도 있지만 강의는 하지 않고 학생 관리나 강의 커리큘럼을 짤 때 서로 상의한다고 한다.

평양과기대가 북한에서 특별히 설립된 대학이라는 것을 뚜렷히 보여준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2012년을 한 해 앞두고 2011년 대학생까지 동원해 대대적으로 아파트 공사를 했는데 과기대생은 빠졌다는 것이다.

전 총장은 이날 발표에서 한 학생의 졸업생 대표 연설 한 편을 소개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던지 피부색이 어떠하든지 모두 PUST(평양과기대)의 한 가족. 우리들의 성공은 즉 교수님의 성공. 우리는 교수님들과 이곳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전 총장은 “졸업식 때 떠나면서 우는 학생도 있었는데 떠나면 언제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졸업생들이 일단 졸업해서 떠나면 임의로 학교에 다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나 교수들도 학생들이 졸업 후 어디에서 무얼 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졸업하면 그야말로 이별이라고 했다.

졸업생들이 어디에서 근무하는 지 전해 듣기만 하는데 은행 계통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환영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김책공대 사리원대 청진대 등 다른 대학에서 가르킨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했다. 일부에서 평양과기대를 나온 인재들이 해킹에 동원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가 국회에서 “해커양성소는 따로 있다. 평양과기대는 아니다”고 한 말을 전하기도 했다.

전 총장은 평양에서 겪은 에피소드들도 소개했다.

북한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하지만 평양에서는 300달러 가량되는 휴대전화를 다들 한대씩 들고 있다며 다만 평양에서 멀리 나가면 끊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전 총장은 평양의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반딧불 부대’도 소개했다. 장마당에는 여성들이 나와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데 여성들이 두부 등 집에서 만든 음식 등을 아파트 입구나 골목에서 팔 때 ‘반딧불 부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두운 거리에서 앉아있다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만 전지를 켜서 물건을 보여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반딧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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