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이런 개헌을 원한다]<1> ‘개헌 첫경험’ 1987년생의 소망
개헌의 해 태어난 87년생들 심층설문
“나에게 개헌은 가능성이자 희망이고 변화다.”
1987년 9차 헌법 개정 당시 태어나 올해 31세가 될 때까지 하나의 헌법 아래 산 대한민국의 첫 번째 세대. 동아일보가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 관련해 두 번의 올림픽, 외환위기와 대통령 탄핵, 세 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한 이들 청년 31명(남자 16명, 여자 15명)에게 ‘내 삶에서 개헌의 의미’를 묻자 20명(65%)이 긍정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부정적(7명·22%), 중립적(4명·13%) 답변보다 훨씬 많았다.
응답자의 90%인 28명이 “현 시점에서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하면서 이들은 새 헌법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스스로의 삶에서 찾았다. 회사원 김가연(가명·여) 씨는 입학한 지 13년이 넘도록 대출금을 갚지 못한 현실을 털어놨다. 김 씨는 “결혼을 하고도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는데 남편한테 참 미안하더라. 내가 바라는 개헌은 소득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양성 평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회사원 양수진 씨는 “우리 나이대 여성들은 남녀 차별을 경험으로 안다. 여성의 노동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주화 헌법의 세례를 받고 태어나 한국 사회를 주도할 시기에 10차 개헌 논의에 참여하는 1987년생들의 개헌 기대감이 높은 건 현실의 벽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에 대한 기억을 묻자 △빈부격차(10명·중복 답변 허용) △기회 불균등(8명) △남녀 차별(7명) △과도한 경쟁(4명) △과중한 업무(2명) 등을 꼽았다. 이들은 새 헌법에서 빈부격차 완화나 기회 균등, 양성 평등 조항이 강화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번에 논의되고 있는 개헌은 1987년 이후 31년에 걸쳐 일어난 대한민국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반영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전 개헌이나 다른 정치적 어젠다보다 시민들의 삶에 끼치는 파급력의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아직 개헌을 위한 대국민 설문조사도 진행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더 이상 개헌을 미룰 수 없다며 이달 20일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예고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청와대 주도의 개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치 전선만 형성하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위한 개헌 동력은 아직 시동도 못 걸고 있는 셈이다.
▼ 공정경쟁권, 여성노동권, 휴식권… ‘평등과 행복’ 목마르다 ▼
“우리 나이에 3억 원짜리 전세 얻을 돈이 어디 있어요.”
“자는 딸 얼굴만 보는 게 무슨 아빠입니까.”
“여자라서 채용 안 한다기에 교사 꿈 접었죠.”
올해 서른한 살, 1987년생의 삶은 불만족스러운 것이 많았다. 헌법에 어떤 가치를 반영해야 하는지에 머뭇거렸던 그들은 “살면서 뭐가 힘들었느냐”고 바꿔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쏟아냈다. 빈부 격차, 남녀 차별, 기회 불균등, 과도한 노동 등 다양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내 가족이 더 행복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헌법에 실어 달라는 목소리였다.
○ “금수저의 ‘반칙’을 불허해 달라”
직장인 하지훈 씨(31)는 몇 해 전 취업한 자신을 가리켜 “운이 좋았다”고 했다. 취업을 못 해 결혼도 미루고 혼자 사는 친구들이 주변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하 씨는 “서울에 전셋집을 얻으려면 최소 3억 원이 필요하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님한테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헌법에서는 어떤 형태의 사회적 특수계급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상 빈부에 의해 계층이 나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금수저는 사실상 ‘반칙’이 용인되는 공정하지 못한 경쟁 시스템도 문제다. 특히 최근 공공기관, 금융기관 취업 비리 등이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안겼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사회의 가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계층·세대 간 격차 해소를 위해 국가의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우승현 씨(31)는 “부모님이 1995년 2억8000만 원에 산 아파트는 현재 18억 원으로 크게 올랐다. 반면 우리는 부모 세대에 비해 결혼, 내 집 마련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대통령,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사회 불평등 문제 해결을 방기한 만큼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인들을 견제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회사원 유승오 씨(31)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 덕에 동네가 뭔가 개선됐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제대로 일을 못 하면 국민소환제를 통해 혼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특권을 제한하고,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다수 나왔다.
○ ‘87년생 김지영’의 절규
‘교사 모집 공고 남 0명·여 0명’
학원 강사 윤아라(가명·31·여) 씨는 대학 졸업 후 수년간 사립 교사 정규직 채용에 응시했지만 남녀 차별의 높은 벽 앞에서 꿈을 접었다. 지원했던 학교마다 최종 합격자에 여성은 없었다. 몇 년 전 윤 씨가 기간제로 일했던 사립고는 젊은 여교사를 전부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윤 씨는 “남녀 교사 성비가 99 대 1 수준이었다. 결혼과 출산 문제 때문에 여성 정규직 채용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헌법은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은 물론 여성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87년생 김지영’들에게는 예외가 많다. 실력이 문제가 될 때도 있겠지만 여자라서, 엄마라서, 아내라서가 이유일 때도 많다. 윤 씨는 “결혼, 출산을 앞둔 여성은 채용 기피 대상이다. 여성의 평등한 노동권을 헌법에서 더 강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 개정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변호사 유선아(가명·31·여) 씨는 “조직에서 성별 하나로 취업과 승진을 결정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포괄한 기본권 항목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과로사회는 이제 그만…휴식권 명시해야”
일 못지않게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세대인 만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펀드매니저 이우진 씨(31)는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런데 이 씨는 요즘 아버지와 점점 닮아가는 자신을 걱정한다. 그는 “퇴근하면 딸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는 내가 무슨 아버지인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윤지민 씨(31)는 쫓기며 사는 삶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윤 씨는 “대학 땐 성적을 잘 받아야 했고, 대외활동으로 스펙을 쌓아야 했다. 취직해서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며 “쉬는 게 죄악시되는 게 아니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헌법에 강제해 달라”고 말했다.
31년 전보다 사회가 크게 변한 만큼 새 요구 사항도 생겼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권리’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요구하며 환경권 강화 목소리가 커진 게 대표적이다. ‘나홀로 가구’와 비혼주의자 등이 늘어난 상황에서 가정 공동체의 법적 테두리를 확대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뤄진 경우만 법적 ‘보호자’로 인정할 게 아니라,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보호자의 범위를 늘려달라는 것. 이 밖에 소수자 차별 금지, 생활 안전권 강화, ‘동물권(權)’ 보장 등도 제시됐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사망한 1월부터, 16년 만에 직접투표로 대통령이 선출된 12월까지. 1987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혁명적 변화를 불러온 기점이 됐다.
올해 31세인 ‘87년생’들은 같은 해 태어난 현행 ‘87년 헌법’과 나이가 같다. 6·10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정치적 민주화’ 이후 세대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아래 국가의 조직적인 폭력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87년 헌법’ 아래 지난 31년간 격변해온 한국사회의 변화상이 이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87년생의 유년기는 전후(前後) 어떤 세대들보다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시기다. 이듬해 열린 88올림픽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선진화를 급속히 진전시켰다. 이어진 ‘3저(低) 호황’과 국가 주도의 고성장 전략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이들은 해를 더해갈수록 윤택해지는 희망적인 삶을 누렸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30대 후반∼40대 중반이었던 이들의 부모세대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태풍 한가운데에 있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얼어붙은 고용시장의 삭풍을 버티는 부모를 보며 ‘평생직장’에 대한 신뢰를 잃고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갈구하게 됐다.
또래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2002년 효순·미선 양 사건에 공분한 이들은 첫 대규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21세 때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광우병 파동, 29, 30세 때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재현된 촛불집회에도 나가봤다. 문화적으로는 H.O.T.와 god 등이 이끈 1990년대 대중문화 황금기를 누리며 사춘기를 보냈다.
2006년 성인이 된 이들의 생애 첫 투표는 이듬해 17대 대통령 선거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두 번째 정권교체를 겪은 뒤, 다양한 정치적 혼란상이 빚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서거했고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또래 군인들이 희생당했다.
이들이 대학 졸업 후 가까스로 첫 직장에 들어간 나이는 남녀 각각 평균 25.7세, 23.9세(통계청, 2013년)다. 하지만 취직이 곧바로 결혼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비혼(非婚)’개념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젠더 감수성’에 민감한 1987년생은 어느 세대보다 격차 해소와 성평등,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며 다음 개헌에 목소리를 얹으려 하고 있다.
김상운 sukim@donga.com·최우열 기자·최고야 best@donga.com·홍정수·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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