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항쟁, 지금 헌법 전문에 반영하는건 아닌것 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일 03시 00분


[대통령 개헌안 급물살]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장이 말하는 개헌

《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장….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해구 헌법자문특위 위원장이 맡아온 자리들이다. 적폐 청산(국정원 개혁발전위), 100대 국정과제 이행(정책기획위), 대통령 개헌안 마련까지 굵직한 현안들이 모두 그의 몫이 됐다. 여권 관계자는 “현실 정치와 시민사회 경험을 갖춘 학자(성공회대 교수)인 정 위원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는 생각 이상”이라며 “이번 개헌안이 향후 개헌 논의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 위원장에게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1일 서울 종로구 정책기획위원회에서 1시간에 걸쳐 민감한 개헌 쟁점에 대해 “접어두지 않고 다 자문안에서 다루겠다”며 소상히 설명했다. 국회 통과를 위해 소극적으로 대통령 개헌 자문안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 위치한 정책기획위원회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민감한 쟁점들을 피하지 않고 대통령 자문안에 다 포함시킬 것이다. 다만 대통령 개헌안에 최종 포함시킬지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 위치한 정책기획위원회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민감한 쟁점들을 피하지 않고 대통령 자문안에 다 포함시킬 것이다. 다만 대통령 개헌안에 최종 포함시킬지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촛불’로 탄생한 정부인 만큼 ‘촛불 시위’를 새 헌법 전문(前文)에 반영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 사건의 성격은 20∼30년 뒤에 평가해야 열정이 가라앉고 냉정하게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1987년) 6월항쟁은 (지금 개헌 논의 과정에서) 평가할 수 있지만, 촛불 항쟁은 (의미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나중에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헌법 전문에) 넣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현 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넣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1987년 개헌이 ‘직선제 개헌’이었다면, 이번 개헌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나.

“87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라는 뚜렷한 하나의 화두와 초점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번 개헌은 ‘다(多)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사이에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그리고 지방 분권과 정부 형태, 국민 직접 참여까지 4개 분야가 이번 개헌에서 가장 중요하고, 쟁점적인 부분이다.”

―정부 형태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일 수밖에 없다. 이걸 빼고 개헌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나.

“특위가 대통령의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말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자문안 작성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많이 고려될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안도 자문안을 만드는 입장에서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이 문제를 (대통령 개헌안에) 포함시킬지는 문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선택할 문제다.”

―일각에선 ‘국무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줘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의견도 있다.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면,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가 섞여 버린다. 총리가 장관 제청권과 해임권을 갖고 있어서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면) 이원집정부제 쪽으로 기운다. 그런데 정부 형태는 두 가지를 섞는 것은 좋지 않다. 섞으면 좋게 말하면 협치인데, 나쁘게 이야기하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자가 두 사람(대통령, 총리)이니 싸움이 나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선거 제도에 대한 복안은….

“정부 형태를 포함한 많은 문제들이 선거 제도와 연관이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선거 제도는 국회에서 정당 간 합의에 의해 법률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특위) 개헌안에는 대선 결선투표제와 국회의원 비례성의 원칙만 다루고, 나머지는 다뤄서는 안 될 것 같다.”

―사법부 개혁 방안은 어떻게 담기게 되나.

“한국에서는 검찰 권력이 굉장히 세다. 검찰이 그동안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측면도 있고, 영장청구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게 논란이 됐고 그런 부분을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다. 또 사법부에서도 이번에 파동이 났지만 대법원장 권한이 너무 크고 권력이 집중돼 있다. 그런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켜 견제와 균형을 찾도록 할 것이냐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

―특위 홈페이지에서 사법부 개혁 등 민감한 22개 안건에 대해 의견을 듣고 있는데, 자문안에 모두 포함되나.

“그렇다. 피해가지 않고 다 다뤄야 한다. 개헌 요강 및 조항까지 만들 것이다. 특위 위원들이 합의하는 것은 하나의 안으로 담긴다. 다만 위원들끼리 의견 차가 있는 경우는 1, 2안 형태로 보고해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선택하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홈페이지를 통한 여론 수렴이 화제에 오르자 정 위원장은 “정치 불신의 문제가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를 임기 종료 전 유권자들이 투표로 파면시키는 ‘국민소환제’의 경우 찬반 투표에 참여한 시민 중 약 92%가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것. 정 위원장은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열망이 강한데, 국민이 뽑은 대표를 못 믿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도 관심사인데….

“이번 개헌의 가장 큰 특징이 될 것이다. 대의정치를 넘어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요구가 강하다. 그래서 직접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두 제도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요구가 아닌가 싶다. 악용 가능성 등 포퓰리즘적 요소가 있지만, 국민 참여가 본질이고 포퓰리즘적 요소는 부작용이지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개헌안 마련에 어려운 점은 뭔가.

“무엇보다 촉박한 시간이 문제다. 그리고 시민단체 등에서 ‘헌법에 넣어 달라’는 요구 사항이 많은 것도 그렇다. 그걸 다 수용하면 지금 헌법의 2, 3배 정도 분량이 되겠더라. 대다수가 법률 사항인데, 법률을 만드는 국회를 못 믿으니 헌법에 포함시켜 달라는 거다. 하지만 헌법은 원칙적이고 포괄적인 부분을 담고, 구체적인 것은 법률에 위임해야 한다.”

―왜 문 대통령이 개헌안 마련을 정책기획위에 맡겼다고 보나.

“처음엔 범정부적 차원의 별도 특위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국회에서 개헌 논의 중인데 대통령이 (국회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문 대통령이) 한 것 같다. 그래서 국회도 존중하면서 대통령 발의안을 만들기 위해 (이미 구성된) 정책기획위가 맡게 된 것이다. 정책기획위 안에 크지 않게 헌법특위를 만든 것이고.”

―문 대통령이 “국민 공감대에 맞는 현실적 개헌”을 당부했는데….

“예를 들어 지방 분권이 그렇다. 시민사회 쪽은 굉장히 높은 수준의 지방 분권을 요구한다. 그런데 국민은 ‘단체장들에게 권한을 줬을 때 잘할까’라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권한 남용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지방 분권에 대한 의지는 확실하지만, 당장 너무 이상적인 수준에서 시작하면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 개헌안의 발의를 늦추거나, 제3의 방법을 찾을 가능성은….

“문 대통령이 복잡하게 계산하는 성격은 아니다.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약속은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 후보가 다 했다. (문 대통령은) 다른 선거도 아닌 대선 때 한 약속은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 개헌안의 국회 통과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아닌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 등 야당이 뭉치면 부결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반대로 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한국당의 지지 기반인 영남 쪽에서 자치 분권을 바라는 기류가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문제 때문에 야당 의원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어찌됐든 개헌안이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률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이지만 헌법은 국민의 의사를 묻는 문제다. 헌법은 국민이 결정권자인데, 중간에 있는 정당이 (국민투표를)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학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도 개헌 국민투표가 성사되려면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개헌안이 부결되면 개헌 동력이 사라진다는 우려도 나오는데….

“반대로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개헌에 대해 본격적 의미의 국민적 토론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 개헌안이 나오면 국민이 접할 수 있는 구체화된 안이 있으니 오히려 토론이 더 활발해질 수도 있다.”

―이번 개헌에 대한 개인적 목표가 있다면….

“그동안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도, 민주화도 상당 부분 됐다. 그런데 ‘헬조선’ ‘흙수저’ 등의 말이 상징하듯 사회는 많이 망가진 것 같다. 젊은층이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기본권 등을 강화해 미래 세대가 인간적으로, 품격 있게 살 수 있는 그런 틀을 헌법이 제공했으면 좋겠다.”

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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