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시장 개입 의무화해야” vs “기업 활동 위축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6일 03시 00분


[국민은 이런 개헌을 원한다]<3> 경제민주화 둘러싼 논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개헌안 중 경제 분야와 관련해 경제민주화를 강화하고 토지공개념을 명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사회 양극화와 부동산 투기 등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려면 이 같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노동계에 치우친 채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큰 정부’가 과도한 규제의 칼을 휘두르면서 경제적 자유를 옥죄는 개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시장경제의 핵심 주체인 기업 관계자와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경제 분야 개헌’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들었다.》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개헌안은 부의 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 정부가 친(親)노동, 친서민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추진하는 경제 분야 개헌안에 경제계의 심정은 복잡하다. 재계 관계자는 “친시장적 가치보다 규제를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기업인들로선 경제적 자유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6·13지방선거와 동시에 진행하려는 개헌 국민투표에 경제 관련 내용이 얼마나 담길지는 미지수다.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은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기본권, 지방 분권, 정부 형태, 국민 참여 등 네 가지를 개헌안의 핵심으로 꼽으며 경제 분야보다 정치 및 권력구조 위주로 개헌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제와 관련된 이슈가 전면에 불거지면 자칫 이념 논쟁 또는 진영 간 대립을 심화시켜 개헌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큰 정부’ 논란

구체적인 경제 분야 개헌 대상으로는 △경제민주화 강화 △토지공개념 도입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보호 △근로 대신 노동으로 용어 변경 등이 거론된다. 이 중 경제민주화는 현 정부의 경제 철학과 맞물려 있는 핵심 이슈로 꼽힌다.

경제민주화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119조 2항을 수정해야 한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선택사항으로 규정한 현행 헌법 조문을 ‘한다’ 또는 ‘해야 한다’로 바꾸는 안이 거론된다. 정부가 시장 실패 또는 대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규제와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논의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노동계에 경도된 정책을 펴면서 기업들이 위축된 상황에서 헌법마저 규제로 무게를 옮겨가면 자칫 자유시장경제 질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국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창의와 자유가 우선하는데도 현 정부와 여당의 분위기는 이와 다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현행 헌법을 유지하되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등 현행 법령을 통해서도 정부가 충분히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헌법이 정부의 규제를 강화하거나 구체적인 내용을 담으면 하위 법령들의 규제 수준은 지금보다 대폭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국회의장인 김형오 국민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 공동위원장은 보고서에서 “개인과 기업이 의욕을 잃고 국가 의존적 풍토가 조성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부동산 투기 잡으려 토지공개념 도입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해 토지에 대한 제한과 부담 부과를 골자로 하는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반영할지도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이 돼 헌법 제122조에 토지공개념을 반영해 국가의 부동산 투기 방지 의무화 및 공공주택 공급 등을 반영하는 헌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중 가구별 합산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향후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쓰기 위해서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놔야 위헌 논란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이미 많은 정책과 법령에 토지공개념이 반영돼 있다. 헌법에 이 같은 철학을 명문화하면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공개념이 도입되면 토지를 국유화하려 한다는 이념 논쟁을 피할 수 없어 논란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 ‘경제적 자유’ 지키는 개헌 돼야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에 경제 관련 사항이 개헌안에 포함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8일 상인단체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를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 청원 등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경제민주화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현재 개헌특위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는 ‘경제민주화 강화, 토지공개념 명시’에 대해서는 찬성 여론이 우세하다.

정부가 경제 분야 개헌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이를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개헌 기회는 흔치 않다. 나중에 경제 분야만 따로 개헌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다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큰 정부’를 지향하는 개헌으로는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특위 자문위 활동을 한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는 “한국의 경쟁력은 수출 기업 또는 한류 같은 민간 영역의 자율성에서 나왔다. 정부 개입이 의무가 되면 이것저것 손을 대면서 자율성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를 위한 개헌을 하려거든 미래지향적 산업경쟁력과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이은택 기자
#개헌#시장개입#의무화#기업#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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