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럽에선 30대 리더 열풍이 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만 39세 나이로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어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도 만 37세에 지도자가 됐다. 유럽 최연소 리더는 31세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다.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도 35세 이상이 출마가 가능하다. 젊은 리더는 활발한 소통과 친화력으로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이 같은 젊은 리더는 나올 수 없었다.
청와대가 26일 발의할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는 ‘한국판 마크롱’의 길을 열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 헌법은 대통령 출마 자격을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로 규정했다. 만 40세 미만은 대선 출마가 불가능했다. 개헌안에는 나이 제한을 없앴다. 대신 국회의원 출마가 가능한 25세 이상만 되면 대선 출마도 가능해진다. 개정 헌법이 시행된다면 다음 대통령 선거 때 만 25세 대통령의 등장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진성준 대통령정무기획비서관은 23일 “대통령이 40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은 참정권 제한이란 취지로 국회의원과 일치시키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치적인 의미가 적지 않거나 현 정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숨어있는 조항’이 개헌안 곳곳에 있었다. 국회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과 관련해 ‘강화조약(講和條約)’이 신설됐다. 문 대통령은 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 참석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 상황이 바뀌더라도 합의 내용이 영속적으로 추진된다”고 말했다. 남북미 정상회담 성공 개최 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면 국회비준까지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진 비서관은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할 사항이라 판단하면 현행 헌법에서도 국회 비준동의를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 사유에 사고 외에 ‘질병 등’을 추가해 전형적인 사고에 포함하기 어려운 원인을 추가했다.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대통령이 복귀 의사를 표시하면 헌법재판소가 복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권한대행은 그 직을 유지하는 한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했다.
소수정당을 배려하는 조항도 기존에 알려진 선거구제에 비례성을 강화한 조항 외에 추가가 된 것이 있었다. 개정헌법 8조 3항은 ‘국가는 정당한 목적과 공정한 기준으로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청와대는 “국고보조제도가 소수 정당의 정치활동을 지원하려는 취지가 있음에도 실제 운영과정에서 거대 정당에 유리하게 운영될 소지가 있었다”고 했다. 소수정당에 국고보조를 더 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다문화시대를 위한 개정 방향도 눈에 띈다. 헌법 9조 ‘민족문화의 창달’ 대목을 삭제하고, ‘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 증진’으로 고쳤다. 대통령 취임 선서에도 ‘문화의 창달’을 추가했다. 여성과 장애인을 위해 ‘국가는 성별 또는 장애 등으로 인한 차별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또 ‘고용·임금 및 노동조건에서 임신, 출산, 육아 등에 따른 차별 금지’(33조 5항)도 있었다. 청와대는 “임신, 출산, 양육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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