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정치권이 최장 60일간의 개헌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1980년 이후 38년 만이다.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발의 직전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며 ‘개헌 대 호헌’ 프레임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임시 국무회의에서 원안대로 의결됐다. 회의 시작 후 약 48분 만이다.
전날 모친상을 당한 이 총리는 이날 오전 빈소를 잠시 비우고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UAE를 방문 중인 만큼 이 총리가 자리를 비우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행으로 회의를 주재해야 했다. 국무회의 심의가 요식적으로 진행됐다는 논란이 더욱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회의장에 등장한 이 총리는 오전 10시부터 5분가량 모두발언을 통해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리는 “헌법개정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받도록 헌법 제89조에 규정돼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주도로 개헌안이 마련된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 국무회의를 거친 정상적 발의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한 것이다.
이 총리가 개헌안을 상정하자 국무위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김외숙 법제처장은 먼저 개헌안 제안 취지와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이어 법무부 장관, 여성가족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감사원장 등 6명이 발언에 나섰다. 주로 개헌안에 공감한다는 의견이었다. 특히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야당이 주장하는 국회 총리추천제를 수용할 경우 국정 운영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토론은 오전 10시 48분경 마무리됐고 이 총리는 곧바로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며 의결했다. 국무회의에는 대통령 개헌안 마련을 조율해온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한병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참석했다.
국무위원들의 서명이 담긴 개헌안을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UAE 현지 숙소에서 오후 1시 35분(현지 시간 오전 8시 35분) 노트북컴퓨터를 통해 전자결재로 개헌안의 국회 송부와 공고를 재가했다.
문 대통령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야당의 반대에도 개헌을 발의하는 이유로 △촛불광장의 민심 구현 △6월 지방선거 동시 국민투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동시 실시 △국민을 위한 개헌 등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개헌에 의해 저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과 지방과 국회에 내어 놓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국민을 위한 개헌’은 문 대통령이 13일 개헌 자문안을 보고받을 때부터 20∼22일 대통령 개헌안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할 당시에도 반복적으로 강조한 메시지다.
한 수석과 김 처장 등은 이날 오후 2시 58분 국회를 방문해 국회 사무처에 개헌안을 제출했다. 국무회의 심의부터 전자결재 및 발의까지 약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국회는 발의된 개헌안을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5월 24일까지 의결을 통해 국민투표 상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금부터 한 달 내로 국회가 단일안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개헌) 시기는 조절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여야에 국회 개헌안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자유한국당은 국무회의 심의 절차 등 개헌 내용은 물론이고 절차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중차대한 역사적 일을 본인 해외 순방 중 전자결재로 발의하겠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위한 개헌이 아니다”라며 “독재개헌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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