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10시 평양에 간 우리 예술단 등이 묵는 고려호텔을 방문해 우리 공동취재단과 만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사진)은 대뜸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전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동평양대극장 공연에서 우리 기자들의 입장이 차단돼 보도 통제 논란이 일자 이를 해명하려고 온 것이었다. 북한 최고위급(부총리급)이 우리 취재진에 사과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 김영철 “취재 활동 제약은 잘못된 일”
김영철은 “(한국) 기자분들이 취재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아서 불편하다고 전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기자분들한테 듣고 싶어서 왔다”고 밝혔다. 전날 상황 설명을 듣고서는 “기자분들 앞에서 제가 먼저 북측 당국을 대표해서 이런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사죄라고 할까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16분간의 간담회 내내 사과한 김영철은 “의도적으로 취재 활동에 장애를 조성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행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협동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결과로 빚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우리가 초청한 귀한 손님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잘하겠다”고 재발 방지 약속도 했다.
1일 공동취재단은 북측 제지로 카메라 촬영기자 1명을 제외하고는 동평양대극장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해 바깥 분장실 안 TV 모니터와 외부 소리로 공연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항의가 이어졌지만 북측 안내원들이 “기다리라”며 막아섰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있는 2층에 기자단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일부 북측 관계자들이 전체 출입 통제 지시로 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탁현민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까지 한때 출입이 통제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 북 특유의 기만전술 가능성도
북한은 3일 두 번째 공연인 류경정주영체육관 공연에서는 취재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공연에는 김정은이 참석하지 않는 것이 확정적이다. 전날 “4월 초 정치 일정이 복잡하여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라며 시간을 쪼개 왔다는 김정은이 연속으로 우리 공연을 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평창 겨울올림픽 계기 교류 당시 북한 기자들은 2월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이 혼자 일어나 박수 치는 모습을 촬영하고 노동신문에 게재했다.
김영철의 이날 사과는 최근 남북 교류로 한국 내에서 북한과의 대화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보도 통제 논란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한국을 달래려는 기만전술로도 볼 수 있다. 김영철이 이날 기자들을 만나 “남측에서 저보고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먹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발언임과 동시에 자신을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지목하는 데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도 풀이되기 때문이다.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을 맞아 방한했을 때 김영철은 2박 3일간 서울 워커힐호텔에 머물며 천안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김정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농담하기도
김정은이 전날 우리 예술단 공연 관람 후 출연진에게 “평양시민들에게 이런 선물 고맙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알려진 것은 잘못 전해진 것이며 실제는 김정은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정은은 “가을엔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하자”는 말을 문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면서 본인도 ‘북측 최고지도자에게 전하겠다’는 일종의 농담으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는 것. 이런 ‘셀프 보고’ 표현은 북측에서 쓰는 유머라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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