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후보자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후 팽팽했던 북-미 정상회담의 기류는 확연히 달라졌다. 김정은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졌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0일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재확인하면서 비핵화 협상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김정은-폼페이오 비밀 회동’에서 폼페이오 후보자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사를 직접 확인하고 비핵화 반대급부에 대해 김정은과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 폼페이오, 비핵화 의지 확인차 방북
북한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남북 간 해빙 기류는 무르익었지만 미국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청와대가 북-미 간 대화를 위한 중재에 나섰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간 직접 접촉에 난색을 표했다. 북-미 관계가 전환점을 맞은 시기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사단이 지난달 8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을 때다. 김정은의 대화 의사를 전해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전격 수락하면서 물꼬가 트인 것.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여전히 물밑 신경전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 방미 직후 트위터에 “(대북) 제재는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러 차례 북한에 ‘단계별 비핵화 방식’으로 협상 지연을 노리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도 전달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중 폼페이오가 이달 전격 방북한 것이다. 북-미 간 실무접촉이 다소 답보 상태로 흐르자 김정은에게서 직접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회담 준비도 속도가 붙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로이터통신은 “(폼페이오의 방북은) 서훈 국정원장과 그의 북한 측 카운터파트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에 의해 짜였다(arranged)”며 “(방북 목적은) 김정은의 대화 의지가 진지한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CNN은 폼페이오의 방북 당시 백악관이나 국무부 인사는 함께하지 않았으며 CIA 소속 정보요원들만 일정에 함께했다고 보도했다.
○ 김정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 의사 밝힌 듯
우리 정부 당국은 폼페이오가 김정은과 만나 원론적 비핵화를 넘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수준의 발언까지 확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8일 정부 핵심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폼페이오가 ‘우리는 과거 실패한 비핵화 협상 방식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김정은에게 강조했고, 이에 김정은은 비핵화 검증 요구까지 일부 수용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가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만큼 김정은이 구체적인 비핵화 방식까지 그에게 일부 언급했다는 것.
김정은의 의지를 확인한 폼페이오는 방북 이후 가진 상원 인준청문회(12일)에서 “(김정은은) 지금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다루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어떤 조건을 내놓을까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 의사를 확인한 뒤 북핵 협상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18일 북-미 간 비핵화 논의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같다”며 “비핵화 달성 방안 역시 북한의 구상과 미국의 구상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불시 사찰 등을 통해 핵 폐기와 검증 절차를 단축하려는 미국의 일괄 타결 구상과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구상 간 간극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김정은은 폼페이오에게 체제 보장 장치를 중심으로 비핵화 조건을 일부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달 중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반대급부로 무엇을 우선 내줄 수 있을지 집중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김정은과 폼페이오가 △워싱턴-평양에 연락사무소 개설 △양국에 대사관 설치 △북한에 인도적 지원 개시 등 조건들을 언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은 북-미 정상회담 장소 및 일정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회담 장소를 결정하는 문제가 쟁점이 됐다”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