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파주 오두산 일대 민간인 통제구역. 해발 고도 100여 m 산 중턱에서 육군 9사단 교하중대 장병들이 30∼40kg 무게로 알려진 에메랄드색 스피커를 연신 들고 날랐다.
이번 대북 확성기 철거는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판문점 선언’ 중 ‘확성기 철폐’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다. 같은 날 북한도 최전방 지역에서 운용 중인 대남 확성기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비무장지대가 평온해진 것이다.
○ 해체 30분 만에 ‘반쪽 확성기’
대북 확성기는 직사각형 소형 스피커 32개를 벽돌처럼 쌓아 만든 형태다. 하지만 금세 ‘반쪽 확성기’가 됐다. 이날 오후 가로 2.4m, 세로 1.5m 크기의 확성기는 전두의 스피커가 모두 없어졌다. 그 대신 남측으로 퍼지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뒤에 병풍처럼 설치한 5m 높이 방음벽만 임진강과 북한 관산반도(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향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날 공개된 확성기는 신형 고정식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2016년 10월 새로 설치됐다. 가청거리는 20km가 넘는다. 확성기가 설치된 지역과 임진강 너머 북한 관산반도의 거리는 1.5km가량이어서 북 주민도 청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2일까지만 해도 하루 8시간가량 방송이 진행됐다. 이에 북측에서도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맞섰지만 방송장비가 열악해 가청거리는 3분의 1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압도적이었던 심리전 무기가 남북 화해 분위기에 ‘조기 퇴역’한 셈이다.
대북 확성기 철거 조치는 이날 오후 2시를 기해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에 이르기까지 전 전선에 걸쳐 진행됐다. 군 관계자는 “고정식 확성기는 우선 9사단 지역 것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철거할 예정”이라며 “이동식 확성기는 그냥 이동시켜 보관하면 끝이어서 철거라고 할 것도 없다”고 전했다.
군은 고정식 30여 대, 이동식 10여 대 등 모두 40여 대의 확성기를 운영해왔다. 이 중 고정식은 스피커 해체 및 매설 선로 정리, 낙뢰 방지 시설 철거 등의 작업을 거쳐 30여 대를 ‘완전 철거’ 하는 데 10일이 채 걸리지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우리보다 앞선 이날 오전부터 최전방 지역 확성기를 철거하기 시작했다”며 “방송 중단은 우리가 먼저 했지만 철거는 북한이 먼저 나섰다”고 말했다.
○ 14년 전에도 철거, 이번엔 ‘영구 철거’ 될까
대북 확성기는 2004년에도 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채택된 ‘6·4합의’ 중 ‘군사분계선 선전수단 제거’ 조항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철거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을 계기로 2015년 8월 확성기를 복구해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했다. 군 당국은 남북 간 8·25합의에 따라 같은 해 8월 25일 확성기 방송을 다시 중단했지만 확성기를 철거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틀 뒤인 2016년 1월 8일 대북 응징책의 하나로 확성기 방송을 신속하게 재개할 수 있었다.
이번 철거는 남북 정상회담 뒤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시행돼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는 항구적인 남북 확성기 철거가 이번에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통일부는 이날 대북전단 살포 중단에 대한 협조 요청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미국 공군의 F-22(랩터) 스텔스 전투기가 다음 주 시작하는 한미 연합 공중훈련(맥스선더·Max Thunder)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에 전개됐다. 1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11일부터 2주간 실시되는 맥스선더를 위해 주일미군 소속 F-22 전투기 8대가 최근 광주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이 전투기 8대가 동시에 배치된 것은 처음.
군 당국은 구체적인 전개 시기와 규모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최근 남북 화해 평화 분위기를 고려한 ‘로키(low key)’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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