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을 청와대 관계자가 대법원에 전화를 걸어 전달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 2월 말 이승련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53·20기)에게 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한 국민청원 내용을 전화로 전달했다. 통화가 이뤄진 때는 국민청원이 23만 명에 이르러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내놓은 그 즈음이었다. 청와대는 당시 “삼권분립에 따라 현직 법관의 인사와 징계에 관련된 문제는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었다.
이 기조실장은 3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2월 말쯤 청와대 관계자가 국민청원 내용을 단순히 알리고 전달하는 수준으로 전화했던 것”이라며 “해결하라, 조치하라는 말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조실장은 “통화 이후 청와대에서 보내온 공문서도 없었고, 대법원에서 징계 등의 조치를 한 것도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행정처 직제상 기조실장은 법원 예산 등 행정 전반을 총괄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국회와 청와대 등과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청와대와 기조실장은 평소 업무상 필요가 있을 때 종종 서로 연락을 한다.
그러나 업무 차원에서 알려준 것이라는 청와대와 대법원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판사 파면 청원을 전달한 것 자체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판결을 문제 삼아 법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위해 판사의 신분 보장을 규정한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한 국민청원의 근거와 정당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대법원에 이를 전달한 것은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헌법 제106조 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법관은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될 수 있는데, 판결은 법관에게 고도의 재량이 인정돼 설령 하급심에서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청와대 관계자가 정 부장판사에 대한 인사 조치를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파면을 주장하는 국민청원을 전달하는 행위로 인해 판사들은 사실상 무언의 압력을 느낄 여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올 1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 항소심 재판 당시 법원행정처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구속 기소) 등 청와대 측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재판부 동향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완전한 독립이 보장돼야 하는 ‘판결’에 대해 의견을 교류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