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靑, 대법에 ‘이재용 항소심 판사 파면’ 국민청원 전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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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사법부 독립 침해 소지” 반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7기)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을 청와대 관계자가 대법원에 전화를 걸어 전달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 2월 말 이승련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53·20기)에게 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한 국민청원 내용을 전화로 전달했다. 통화가 이뤄진 때는 국민청원이 23만 명에 이르러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내놓은 그 즈음이었다. 청와대는 당시 “삼권분립에 따라 현직 법관의 인사와 징계에 관련된 문제는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었다.

이 기조실장은 3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2월 말쯤 청와대 관계자가 국민청원 내용을 단순히 알리고 전달하는 수준으로 전화했던 것”이라며 “해결하라, 조치하라는 말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조실장은 “통화 이후 청와대에서 보내온 공문서도 없었고, 대법원에서 징계 등의 조치를 한 것도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행정처 직제상 기조실장은 법원 예산 등 행정 전반을 총괄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국회와 청와대 등과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청와대와 기조실장은 평소 업무상 필요가 있을 때 종종 서로 연락을 한다.

그러나 업무 차원에서 알려준 것이라는 청와대와 대법원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판사 파면 청원을 전달한 것 자체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판결을 문제 삼아 법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위해 판사의 신분 보장을 규정한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한 국민청원의 근거와 정당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대법원에 이를 전달한 것은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헌법 제106조 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법관은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될 수 있는데, 판결은 법관에게 고도의 재량이 인정돼 설령 하급심에서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

李부회장 “좋은 모습 못보여드려 죄송”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353일 만에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취재진에게 “1년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의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李부회장 “좋은 모습 못보여드려 죄송”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353일 만에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취재진에게 “1년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의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더욱이 청와대 관계자가 정 부장판사에 대한 인사 조치를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파면을 주장하는 국민청원을 전달하는 행위로 인해 판사들은 사실상 무언의 압력을 느낄 여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올 1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 항소심 재판 당시 법원행정처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구속 기소) 등 청와대 측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재판부 동향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완전한 독립이 보장돼야 하는 ‘판결’에 대해 의견을 교류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전주영 기자


#청와대#대법#이재용 항소심 판사 파면#국민청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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