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의 의미를 강경하게 조정하고 북한이 폐기해야 하는 무기의 범위를 확대하더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의에 대해서도 정밀한 선 긋기에 나섰다.
5일(현지 시간) 미 국무부는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이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ICBM에는 인공위성도 포함됨을 분명히 밝혔다. VOA는 국무부 대변인실이 “북한이 지난달 말 발표한 ICBM 시험발사 중단에 ‘위성 발사 중단 약속’도 담긴 것으로 이해하느냐”는 VOA의 질의에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떤 위성 발사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명백히 위반된다”고 답변했다고 VOA는 보도했다.
○ 美 진보-보수 모두, “북한 불신하며 검증해야”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 표를 ‘완전한 비핵화(CVID)’에서 ‘영구적 비핵화(PVID)’로 강화하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WMD)의 총체적 폐기를 주장하더니 ‘평화적 우주개발’을 명분으로 한 ICBM 시험발사도 불가하다는 입장도 분명히 한 셈이다. 북한은 2012년 북-미 간 2·29 합의에서 식량 지원을 대가로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광명성 3호’를 발사해 합의가 깨졌다. 당시 북한은 ‘우주개발용 로켓’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인 만큼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이런 전력(前歷) 때문에 전문가들의 대북 의견은 “‘Distrust everything and verify, verify, verify’(북한의 모든 것을 불신하며 검증, 검증, 검증하라)로 모아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NYT는 “북한의 핵무기 관련 시설은 광범위하고, 북한이 자신들의 핵시설을 정직하게 공개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며 “북한 핵시설이 워낙 방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인력은 부족하기 때문에 ‘검증’이 아니라 ‘모니터링’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IAEA 검증 인력이 직접 검증 작업을 하지 않고 북한 전문가들이 검증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라크 핵폐기 작업에 참여했던 데이비드 케이 포토맥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모니터링 정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타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 “김정은이 트럼프 갖고 놀면 종말 맞을 것”
미 상·하원의 중진들은 방송에 출연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의회 내 대표적 대북 초강경파인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은 6일(현지 시간) 뉴욕AM970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미국의) 전직 대통령 모두를 갖고 놀았지만, 트럼프를 갖고 놀려 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 앉고서도 거래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면 (이는) 북한 정권의 종말을 뜻한다”고 경고했다. “내가 김정은이라면 트럼프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미 하원 군사위원장인 공화당 맥 손버리 의원은 같은 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핵탄두와 핵연료, 미사일을 북한 밖으로 반출하는 방식으로 비핵화가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매우 회의적이다”라며 “(북-미 협상이 깨지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북한의 미국에 대한) 미사일 공격 대비 태세도 강화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외무성이 최근 “(미국의 대북 압박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본격 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 기조를 흔들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미국에 (항의할) 명분을 쌓아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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