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북측의 한밤중 무기한 연기 통보로 좌초됐던 남북 고위급 회담이 당초 일정보다 보름여 늦은 1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렸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지난달 26일 ‘깜짝 정상회담’ 후 남북 관계가 다시 궤도에 진입한 것이지만, 향후 실무접촉 일정이 대부분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 잡혀 있어 비핵화 진전에 따라 남북 관계의 실질적 진전 여부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 북-미 회담 앞두고, 남북 관계 개선 다시 급물살
이날 고위급 회담은 판문점 선언 이후 잠시 ‘교착 상태’가 이어졌던 여러 남북 교류의 이행에 속도를 내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비록 판문점 연락채널이 있지만 유선전화와 팩스라 소통에 한계가 있는 만큼 가까운 시일 안에 양측의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업지구에 개설하기로 했다. 남북이 ‘상시 대면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향후 실무회의 일정도 줄줄이 잡혔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국방장관 회담 개최를 논의하기 위한 장성급 군사회담이 14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리고, 남북통일농구경기와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 공동 진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체육회담이 18일 평화의집에서 열린다. 이산가족 및 친척 상봉 등 인도적 문제 협의를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이 22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이 외에도 동해선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등을 논의하는 도로협력분과회의, 북측 산림 황폐화 등을 막기 위한 산림협력분과회의, 가을 북측 예술단의 남측 공연 ‘가을이 온다’(가칭)를 위한 실무회담 등의 일정은 문서 교환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6·15 남북 공동행사는 사실상 무산됐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날짜나 장소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행사 자체는 개최하지 않는 방향 쪽으로 일단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조 장관은 “비핵화 문제까지는 의제가 안 됐다”고도 전했다.
○ 개성공단과 금강산 꼭 집어 재개 움직임
북한은 이날 오전 회의에서 우리가 ‘개성 연락사무소’ 설치를 요구하자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성공단 내 시설 개·보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개성공단의 재가동은 아니지만 일부 기반시설 보수를 요구한 셈이다. 또 8·15 이산가족 상봉 등을 논의할 적십자회담 장소가 금강산으로 잡혔다. 실제 상봉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현장 점검과 함께 회담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만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노린 북한의 포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직 북-미 간 비핵화와 관련된 합의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제재의 상징물과도 같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가 다시 조명을 받게 된 셈이다.
지난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북한은 이날 회담에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남측 탓으로 돌렸다. 지난달 17일 북한 매체를 통해 ‘엄중한 사태 해결’을 운운하며 회담 무기한 연기를 거론했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이날 대표단장으로 나와 ‘엄중한 사태가 해결됐느냐’는 남측 기자의 질의에 소속 언론사를 되묻더니 “이런 질문은 무례한 질문으로 치부할 수 있다”고 했다. 회담장에서 조 장관을 마주하고는 “5월 달 우리가 만나지 못한 건 기자 선생들이 있으니까 조명균 장관 선생이 절대 자기비판은 하지 마시고 넘어갑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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