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D-7]북미회담 이슈에 묻혀 선거 실종
공약사이트 접속, 유권자의 1%뿐… 후보 자질 검증없이 깜깜이 투표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 몫으로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아파트 103동 3, 4, 5호 라인. 사흘 전 선거공보물이 80개 가구별 우편함에 꽂혔는데, 절반 이상이 그대로 있었다. 우편함 밖으로 삐죽 나온 봉투에 ‘선거’ 글씨가 선명해 누가 봐도 6·13지방선거 공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방선거 후보 공약 사이트의 누적 접속자 수는 57만4011명, 전체 유권자(4290만 명) 대비 1.3%에 불과했다.
6일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12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례 없는 ‘선거 실종’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유불리를 떠나 선거전을 치르는 각 정당에선 “매일 쏟아지는 북-미 정상회담 이슈로 공약을 알리기조차 쉽지 않다”고 푸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으로 여론이 여당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라 선거 판세도 화제가 되지 않고 있다. 직장에선 선거 때마다 결과를 놓고 벌어졌던 ‘사다리 타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후보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줘버렸다”며 “후보자에 대한 관심 실종, 여론을 주도할 만한 민생 이슈의 실종, 후보자 간 치열한 접전의 실종 등 ‘3대 실종’으로 최근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 중 가장 낮은 수준의 투표율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조금이라도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후보들의 언어는 갈수록 말초적이고 거칠어지고 있다. 상대 후보의 정책보다는 사생활을 들추는 네거티브 선거전의 강도도 세지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대선이나 총선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지방 예산은 210조6000억 원. 국가(중앙정부) 예산과 합친 총 공공예산(541조 원)에서 38.9%를 차지할 정도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되는 전국 4016명의 지역 일꾼이 바로 이 막대한 돈을 주무르고 관리하게 된다. 광역단체장 17명과 기초단체장 226명 기준으로 계산하면 단체장 1명이 1년에 86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으로 유권자들이 외면한 선거를 통해 뽑힌 지역 일꾼들은 정치적 정통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각종 문제가 야기될 수 있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폐기장 유치 등 첨예한 갈등 이슈가 벌어졌을 때 의견을 수렴하고 해법을 찾는 정치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조진만 교수는 “민주주의에서 다수가 의사를 표출하지 않고 침묵하면 소수의 민심이 전체 의견인 양 왜곡될 수 있다”며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왜곡된 민심이 ‘실체’가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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