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유예 얻어낸 北, 이젠 ‘킬체인 무력화’ 노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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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군사분계선 양측 60km내 정찰비행 중지” 제안



북한이 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거론한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비행과 정찰활동의 제한·금지구역’ 설정은 얼핏 보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대화 기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를 추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꺼풀을 벗겨 보면 한미 양국군의 대북 감시망을 견제하려는 속내가 확연히 드러난다.

MDL 인근과 이북 지역의 북한군 동향을 밀착 감시하는 한미 군의 정찰전력을 걷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미가 8월로 예정됐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유예한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한미 연합군의 대북 전력 이완을 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한미 군의 대북 감시 ‘눈과 귀’ 가리기 시도하나

북한은 MDL 인근과 그 이북 40∼90km 구역에 장사정포와 미사일, 병력 등을 촘촘히 배치해 놓고 있다. 수십, 수백 개의 지하 갱도와 벙커 속에 들어 있는 이들 전력은 수시로 위치를 바꾸거나 은폐와 엄폐 등 위장전술을 펼치고 있다. 유사시 대남 기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일거수일투족은 한미 군의 정찰감시전력이 들여다보고 있다. 미 정찰위성과 고고도무인정찰기(UAV) 글로벌호크를 비롯해 주한미군의 U-2S 정찰기, 한국군의 RF-16 정찰기, 군단급 UAV 등이 MDL 일대와 후방 깊숙한 곳의 북한군 동향을 샅샅이 훑고 있기 때문. 지상에서 500km 상공까지 한미 연합 감시 전력이 삼중 사중의 대북 감시용 그물망을 펼쳐 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몇 시간에서 일 단위로 북한군의 야포와 전차, 이동식발사차량(TEL), 병력의 위치와 이동 여부가 식별돼 북한으로선 사실상 운신의 폭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파악된 MDL 인근과 후방 지역의 북한군 주요 전력들은 유사시 한미 군의 최우선 타격 목표로 설정된다. 한미 군은 매년 키리졸브(KR)와 UFG 등 연합 군사연습을 통해 북한이 도발하면 이런 표적들을 최단 시간에 제거하는 훈련을 반복해왔다.

이 때문에 한미 군의 정찰감시전력은 북한군에는 ‘눈엣가시’이자 공포의 대상이다. 반면 북한군의 정찰전력은 소형 UAV 등 한미 군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군 당국자는 “MDL 인근과 후방에 비행·정찰금지구역이 설정되면 한미 군의 ‘눈’과 ‘귀’가 가려질 수 있다고 북한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이런 제안은 우리 군이 추진 중인 킬체인(Kill Chain·북한 핵·미사일 감시 파괴)을 무력화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킬체인의 핵심은 MDL과 북한 후방 지역의 핵과 미사일 동향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정찰감시전력이다. 군 소식통은 “우리 군이 킬체인을 위해 성능을 개량하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첨단 정찰전력을 애당초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내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 ‘병력·전력배치제한 구역’ 설정 요구할 수도

일각에선 북한이 앞으로 MDL 주변 남북 지역에 ‘병력·전력배치제한구역’을 설정하자고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령 MDL 남북으로 각각 20∼40km 구역에 각종 무기와 병력 배치를 최소화해 ‘평화구역’이나 ‘충돌방지구역’으로 삼자고 제안할 수 있다는 것. 이는 1990년대 초 냉전 해체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간의 군축 과정 등에서 적용된 바 있다.

하지만 MDL에서 서울(40여 km)과 평양(140여 km)의 거리가 3배 이상 차이가 나 전방 군사력을 대폭 축소하거나 철수하면 우리 군이 감당할 ‘리스크’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전면 남침이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기습 함락을 시도할 경우 이를 저지하고, 미 증원전력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완충지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평양∼원산 선부터 MDL까지 모든 무기·병력의 70% 이상을 배치해 둔 상태여서 최전방 일부 전력을 뒤로 물려도 대남 기습에는 별 지장이 없다. ‘병력·전력제한배치구역’은 북한군의 이런 전력들을 대대적으로 축소·해체하거나 후방으로 재배치한 뒤에나 신중히 고려해 볼 사안이라는 얘기다.

다른 군 관계자는 “상호 군사훈련 참관과 무기장비 사찰검증 등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통제가 충분히 이뤄지기 전까지는 전방 지역의 군사력을 건드리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
#한미훈련 유예#킬체인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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