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사람들도 최근 한반도 상황이 격변하고 있는 내용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핵개발 성공으로 미국이 북한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죠.”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7일까지 한 달 동안 북한 평양에 머무르고 돌아온 네덜란드 레이덴대 한국학과장 쿤 데 궤스테르 교수는 22일 레이덴대의 연구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서 평양 사람들도 현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평양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5월26일)을,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6월12일)을 잇달아 가졌다.
궤스테르 교수는 “김정은의 평양에 대한 권력 장악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김정일)는 외부 활동을 나가면 늘 평양 복귀 후에야 그 소식을 전해 권력 공백이 없도록 했지만 김정은의 경우엔 싱가포르 출발 전에 북-미 회담 사실을 이미 평양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김정은은 권력 장악에 자신이 있고, 아버지와 스타일도 다르다”고 말했다.
궤스테르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이 ‘주적’으로 여겨 온 미국과 대화를 시작한 데 대해 북한의 핵개발이 완성되면서 두려워진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대미(對美) 타격을 두려워 해 협상을 요청했고, 이에 (김정은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해서 미국과 당당하게 동등한 파트너로 테이블에 앉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미 핵무기 완성을 선포한 북한은 내부적으로 경제에 집중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그는 전했다. 궤스테르 교수는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는 대부분 외교나 정치보다는 공장 생산성을 높이고 건설 붐을 일으키자는 등 경제에 주로 타깃이 맞춰져 있었고 예전에 비해 거리에 붙어있는 선전물들도 경제와 관련된 것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가 찍어온 사진에는 ‘모든 것은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하여’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 등의 비(非)정치적 선전물이 거리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궤스테르 교수는 북한의 개방과 변화 수준에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체제를 약화시키는 어떤 변화도 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개방을 택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마오쩌둥 이후 어느 중국 지도자보다 강하게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데, 김정은도 이런 리더십을 꿈꿀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도날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하순 갑자기 북-미 회담 취소를 발표했을 때 당시 북한은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에 이 소식을 한 줄도 전하지 않고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로 된 평양타임즈에서만 내용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트럼프가 회담을 취소했는지 몰랐다. 북한 정부로서는 북-미 회담 취소를 그만큼 바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궤스테르 교수는 “중국까지 동참한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평양에선 각종 건설도 속도를 내고 있었고 거리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는 평양 시민이 늘어나는 등 예전보다 여유로웠다”며 “미스테리(불가사의)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궤스테르 교수는 한 달 동안 평양 호텔에 머물며 만수대창작사와 평양미술종합대학에 방문해 북한 미술을 연구했다. 예술가 1000명, 기술공과 같은 스태프까지 하면 4000명이 넘게 소속된 만수대창작사는 포스터 조선화(朝鮮畵·한국화) 조각 벽화 등 각종 예술작품을 담당하는 북한 최대 창작 단체다.
궤스테르 교수는 “2004년 주로 한지에 붓으로 그리는 조선화를 처음 접한 이후 유럽의 유화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매력에 빠졌고 이후 북한 미술을 연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를 통해 방북을 신청하면서 만나고 싶은 북한 예술가 리스트를 전달했고 그 중 3명과 함께 평양 모란봉 공원, 용악산, 평양식물원, 중앙동물원 등을 다니면서 스케치 작업을 하고 그들의 생활에 대해 들었다.
궤스테르 교수는 “북한 그림 중에는 이데올로기 성격이 강한 인물화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를 담은 생활화, 풍경화, 꽃과 새를 그리는 화조화 등도 있다. 북한에도 규모는 모르지만 미술시장이 형성돼 있어서 만수대 갤러리에는 국내인들만을 위한 샵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만수대창작사에 속한 예술가들은 박물관 학교 등에 걸릴 그림과 국제시장에 팔기 위한 창작 작품을 둘 다 그린다”고 전했다.
그는 동물원에서 말(馬) 스케치를 했던 30대 후반의 여성화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궤스테르 교수는 “그 화가는 북한 지도자들이 나오는 작품을 주로 그리지만 동물, 특히 말을 기가 막히게 잘 그렸다. 그는 ‘나는 정서적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감성과 영감이 풍부한 건 다른 나라의 아티스트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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