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인 2017년 5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철창에 갇힌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동아일보DB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온 가운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헌재는 28일 병역법 88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법원이 낸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 대 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입영 또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기일부터 3일이 지나도 불응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위헌 심판 사건의 쟁점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에 따른 입영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볼 것인가 여부다. 헌재는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면서도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법조항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런 가운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비폭력주의라는 양심 또는 신앙에 따라 전쟁이나 무력 행위에 참가하는 것과 군 복무를 반대해 병역이나 집총 의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해당 표현에 반대하는 이들은 ‘양심’이라는 용어에 반감을 드러냈다. ‘군대 간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라는 것인가?’라는 주장이다.
이날 헌재의 결정이 보도된 후 온라인에서는 “뭐가 양심적이라는 말이냐. 그냥 종교적 신념으로 군대 안간다 해라. 그럼 군대 간 사람은 다 비양심적인 사람이냐(lhoy****)”,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니라 비겁한 병역회피라고 해라(rhda****)”, “양심적 병역거부, 오늘부터 비 양심적 병역거부 라고 바꿔라(jdhu****)”, “헌재의 결정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양심적이 아니라 종교적 병역거부로 명칭을 바꾸어라(baek****)”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도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 명칭 변경’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군대를 간 사람들은 양심이 없어서 간 건가?”라며 “양심적이 아닌 종교적 병역거부로 바꿔달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재 결정은 이번이 네 번째로, 매번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논란이 됐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는 미국의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라는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먼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by religious belief)’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conscientious objection’은 미 연방대법원의 1965년 시거(Seeger) 사건 판결에서 나왔다. 비록 종교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병역거부가 거부자의 삶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는’ 개인적 신념에 따른 것이라면 함께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conscientious’를 ‘양심적’이라고 직역하면서 긍정적 가치평가를 내포하게 됐고, 양심적 병역거부가 마치 병역거부를 미화하고 병역의무 이행을 폄하하는 듯한 혼란을 빚게 된 것.
이와 관련, 신운환 한남대 법대 교수는 과거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conscientious objection’ 개념을 보다 잘 표현하려면 거부의 직접적 근거가 구체적 신념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해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의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며 “신념은 보편적 신념과 개인적 신념으로 나눌 수 있으므로 병역 거부자 개인의 독특한 신념이라는 점을 더 정확히 표현하도록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제안한 바 있다.
정계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지난해 8월 당시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무죄 선고가 나오자 “법범자 양산을 막고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이 역차별받지 않도록 병역 거부자들이 군 복무에 상응하는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 대해 “병역 거부자를 양심적이라고 하면, 어감상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오해될 수 있다”면서 “특정 종교의 교리나 개인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라 종교·신념적 병역 거부자로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도 당시 안철상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가 용어 자체를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안 그러면 모든 병사들이 비양심적 병역 거부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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