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대기업 중심의 외바퀴 전략에서 소득주도·일자리·동반성장·혁신성장의 4륜구동 성장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캠페인 시절 밝힌 경제정책 구상이다. 이러한 구상은 새 정부 출범 후 ‘사람 중심 경제’로 정리, 공포됐다. ‘문재인표’ 경제 패러다임은 4륜구동, 즉 ①소득주도성장 ②일자리 중심 경제 ③공정경제 ④혁신성장으로 굴러간다. 지난해 7월 25일 정부는 이러한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경제성장을 수요 측면에서는 일자리 중심·소득주도성장, 공급 측면에서는 혁신성장의 쌍끌이 방식으로 전환해 분배·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는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구현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돼 ①, ②번 바퀴에 ‘고장’이 났다. 6월 26일 청와대에서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 중심 경제정책을 책임지던 대통령비서실의 홍장표 경제수석(사진), 반장식 일자리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여론은 이를 ‘경질’로 해석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고, 일자리 정책이 부진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일사분기(1~3월)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평균소득을 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은 5.95배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그래프 참조). 분배가 나빠진 것이다. 일자리 상황도 어둡다. 1월 30만 명을 넘던 취업자 수 증가폭이 2월부터 10만 명대로 떨어져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7월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 동향에서도 취업자는 2712만6000명으로 전년 대비 10만6000명 느는 데 그쳤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5개월 연속 10만 명대 이하로 나타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홍 전 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인 그는 최근 10여 년간 소득주도성장 관련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 전에는 주로 대·중소기업 간 격차, 원·하청 관계 등의 연구에 천착했다. 2014년 발표한 두 편의 논문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변동이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사회경제평론),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경제발전연구)은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한 가장 권위 있는 국내 논문으로 꼽힌다. 홍 전 수석은 각종 토론회에서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증가하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노동생산성 또한 상승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을 설파해왔다. 그는 2012,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소득주도성장을 주입한 주역으로 꼽힌다. 2014년 7월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 대통령이 주최한 ‘소득주도성장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기도 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홍 전 수석”이라고 말했다.
“김동연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해 어떤 메시지일까. 소득주도성장은 여전히 문 정부 경제 패러다임의 첫 번째 바퀴 역할을 하는 것인가.
‘민간인’으로 돌아간 반 전 수석과 달리 홍 전 수석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정책기획위) 산하에 신설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소득주도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사무실은 청와대와 지근거리인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홍 전 수석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뒤 휴식기를 갖지 않고 바로 이곳 사무실로 출근해 소득주도특위 구성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홍 전 수석과 가까운 한 경제계 인사의 말이다.
“언론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가 부진해 홍 전 수석이 경질됐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홍 전 수석은 사람이 참 좋다. 그래서 장악력이 좀 부족하다고 ‘위’에서 판단한 것 같다. 홍 전 수석은 특히 기획재정부를 장악하지 못했다. 각종 회의 때마다 홍 전 수석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김 부총리에게 청와대 말이 먹혀들지 않은 것이다. 경제정책을 주도하려는 청와대로서는 김 부총리를 장악할 사람이 필요했다. 청와대가 홍 전 수석을 내보낸 것은 김 부총리의 카운터파트를 바꾼 것이지, 소득주도성장을 안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홍 전 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을 두루 지원하는 역할을 하라는 특명을 받고 소득주도특위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안다.”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도 홍 전 수석에 대해 “새로운 동력을 만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고, 새로운 추진력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장표’로 상징되는 소득주도성장이 퇴장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홍 전 수석도 6월 27일 청와대 현안점검회의에 마지막으로 참석해 “그동안 학자로서 주장하던 내용이 중요 정책으로 자리 잡아 무한한 영광으로 느낀다. 입이 있어도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이제 재갈이 풀렸다. 앞으로는 자유롭게 주장을 펼쳐나가겠다”고 했다.
한편 홍 전 수석의 바통을 이어받은 윤종원 신임 경제수석은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기획재정부에서 두루 요직을 거친 ‘정책통’이다. 기획예산처 출신인 김 부총리와 한 팀으로 일한 적은 없지만, 동료 공직자로 오랜 기간 교류해온 사이로 알려진다.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재직하는 동안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포용적 성장을 강조해 문 정부와 코드가 맞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 대통령은 7월 2일 윤 수석을 만나 “청와대와 정부 사이에 가교가 돼달라”고 당부했다.
‘상근’ 위원장에 전문위원 채용도
홍 전 수석은 소득주도성장에 뜻을 같이하는 전문가들에게 특위 참여를 제안하며 세(勢) 규합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위 참여를 제안받은 한 경제학자는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면피성 시그널을 보내는 수준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일하는 특위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보통 특위 위원장은 비상근이다. 소득주도특위도 마찬가지여서 홍 전 수석은 현재 본 직장인 부경대로 복직한 상태다. 그러나 ‘제대로 일하기 위해’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상근직으로 변경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득주도특위는 전문위원도 몇 명 채용한다. 정책기획위 관계자는 “현재 행정안전부와 소득주도특위의 직제·예산 등을 협의 중이며 8월 즈음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정책기획위에 전문위원 5명이 있는데, 그보다는 적은 수의 전문위원을 채용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정부에 보유세 권고안을 제출한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위원 30명을 둔 작지 않은 조직이지만 전문위원은 없다.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 목표의 두 번째가 ‘더불어 잘사는 경제’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5개 전략 가운데 첫 번째가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다. 이 전략에 해당하는 과제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 △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구축과 일자리 확충 △성별, 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 △실직과 은퇴에 대비하는 일자리 안전망 강화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산업 혁신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가계부채 위험 해소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등이 있다(표 참조).
그런데 지난 1년간 청와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의 구체적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 외엔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그마저도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간 인식 격차가 두드러지는 등 불협화음이 일었다. 5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가계소득동향점검 긴급회의에서 김 부총리와 청와대 참모진 사이에 최저임금에 대한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정부 고위 관료는 “양쪽 다 팩트가 없는 주장이라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특위는 이러한 미비점을 채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소득주도특위 참여를 제안받은 한 인사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매우 많은데, 그간 유독 최저임금에만 자원이 집중돼 정책적 실효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앞으로 소득주도특위는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임대료나 카드수수료 대책 등을 정부가 종합적으로 추진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국민을 대상으로 한 소득주도성장 홍보 등에도 주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소득주도특위 참여를 제안받은 다른 인사는 “소득주도성장을 하려면 거시경제정책, 산업정책, 복지정책을 아우르는 중·장기적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며 “청와대 경제수석은 현안에 쫓기는 자리이므로 오히려 특위에서 차분하게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실제 홍 전 수석은 학자 시절 ‘패키지형 정책 개발’을 강조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인상할 리 없고,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 인센티브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정책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최저임금 인상, 영세·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대책, 하도급거래 공정화 등의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경제 패러다임을 떠받치는 4개 바퀴 가운데 적어도 2개 바퀴(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한 소득분배는 장기적인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가. 6월 29일 한국개발연구원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로버트 블레커 미국 아메리카대 교수는 “임금인상으로 기업 이윤이 단기적으로는 줄지만, 궁극적으로 노동 비용 절감을 위해 오히려 설비투자를 늘려 소비가 증가하고 투자가 늘어나 총생산과 성장률까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국장은 “소득불평등은 경제성장과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소득주도성장은 소득분배 개선으로 성장의 추가 동력을 찾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성장 추세, 생산인구 감소 등 국내 경제 현실을 지적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은 장기 침체 예방을 위한 구조적 총수요 확대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탄한 이론과 증거 마련해야”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은 분배 정책”이라며 “분배 개선이 생산성 향상에 일부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 성장 정책으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은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인데, 청와대가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왕 특위를 구성했으니 앞으로 탄탄한 이론과 증거를 갖춰 정부 관료들을 설득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계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이번 조치(일자리 안정자금 등 최저임금 대책)는 정부가 재정 자금을 투입해 가계소득을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수를 증진해 결과적으로 소득분배와 성장으로 이어지는 소득주도성장의 첫 출발점이다. 꾸준히 지켜봐달라.”
지난해 7월 청와대 페이스북 동영상 ‘친절한 청와대-최저임금 대책 편’에 출연한 홍 전 수석의 일성(一聲)이다. 그리고 1년. 소득주도성장은 여전히 출발점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소득주도특위로 한 발 물러서 새롭게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도모하는 홍 전 수석이 ‘가계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요 논문 :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변동이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 : 임금주도 성장모델의 적용 가능성’(사회경제평론·2014),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경제발전연구·2014),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 결정요인 : 계층적 공급사슬에서 아웃소싱과 노동조합의 효과를 중심으로’(산업노동연구·2016) 외 다수
⊙주요 저서 : ‘영세중소기업 정책연구’(2007),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와 고용관계의 계층성’(2004), ‘기업민주주의와 기업지배구조’(2002)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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