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선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처리과정을 놓고 국방수장과 기무사 지휘관들의 엇갈린 증언들이 쏟아졌다. 저마다 결백을 강조하면서 지휘체계와 계급을 무시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미증유의 상황이 공개석상에서 벌어진 것. 장관 직속 부하(기무사 간부)가 장관 발언을 정면 반박하는 ‘폭로성 진술’이 이어지는 등 이번 사태를 둘러싼 군내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 현직 기무부대장, “국방장관 발언은 거짓”
민병삼 100기무부대장(대령·육사 43기)은 발언대에 서자마자 “장관이 7월 9일 오전 간담회에서 ‘내가 법조계에 문의해 보니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해 보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당시 간담회에 14명이 참석했고, 저는 기무사와 관련한 (장관의) 말씀이어서 명확히 기억한다”며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의 명예와 양심을 걸고 답변한다”고 했다.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장은 장관 직속부하다.
송영무 장관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완벽한 거짓말”이라며 강력 반발하자 그는 “당시 간담회 내용을 담은 문서는 운영과장이 PC에 쳐서 기무사에 보고했다. 그 내용이 다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국방위가 요청하면 해당 문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문건보고 과정에 대한 송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령관의 진술도 엇갈렸다. 이 사령관은 “3월 16일 오전 10시 38분에 장관실에 들어가 위중함을 인식할 정도로 20분 정도 대면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 장관은 “(이 사령관은 밖에서) 10분 정도 대기했다. 제가 (장관실을) 나간 건 55분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보고시간은 5분가량이었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냐’는 일부 의원의 추궁에 송 장관은 “평생 정직하게 살아왔다. 증인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해일 장관 군사보좌관(육군 준장)은 자신의 아이패드를 꺼내 보이며 “(이 사령관이) 10시 38분에 본관 2층 보좌관실로 들어와서 악수하고 10시 50분에 장관실 들어가서 5분 보고했다”고 했다.
정 보좌관은 민 대령을 향해서도 “지휘관이 한 발언을 왜곡하고 각색해서 국민 앞에서 보고한다는 건 경악스럽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 대령은 “제 기억은 정확하다”고 반박했다.
또 이 사령관은 문건 2부를 출력해 1부를 장관실에 두고 나왔고, 나머지 1부는 복귀 후 세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이 사령관이 1부를 청와대에 전달했고, 청와대가 보관하다 ‘국면전환용’으로 사용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계엄 문건을 작성한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 등은 “조현천 당시 사령관이 한민구 장관의 지시라며 계엄절차를 검토하라고 해 메인 보고서(8쪽)와 참고자료(67쪽)를 만들었다”면서 “조 사령관이 한 장관에게 보고 후 ‘추후 훈련에 참고하도록 존안해라’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또 ‘군사 Ⅱ급비밀’ 표시가 찍힌 ‘참고자료’는 비문 등재가 안 된 문건이라고 진술했다.
○ 모종의 거사 계획? 과잉 충성의 부산물?
이런 논란이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 관계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단순 검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군 특별수사단에 진술한 것으로 24일 전해졌다. 하지만 23일 오후 국회를 통해 전격 공개된 기무사 세부자료(67쪽) 곳곳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이 발견된다. 1980년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연상케 하는 정교한 국회 무력화 및 치밀한 언론통제 계획은 물론이고 계엄 발령 후 대미 설득방안 등은 ‘실행계획’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정치·언론·군사적 차원을 망라한 ‘모종의 거사’를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반면에 실행계획이라고 하기엔 허술한 대목도 눈에 띈다. 지난해 3월 조현천 당시 사령관이 ‘쿠데타 계획’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1년간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보관하다 정권교체 후 후임 장관·사령관에게 인계하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령관도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 “올 3월 초 문건 작성 부대원이 (두 문건을) 자진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두 문건이 정권에 과잉 충성한 기무사의 민낯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지적이 많다. 군부 정권 시절의 구습에 젖은 기무사가 촛불정국 때 ‘정권 보위’에 총대를 메고 존재감 과시에 올인(다걸기)했고, 그 ‘부산물’이 최근 잇따라 나온 문건이라는 얘기다.
한편 기무사 문건 사건을 규명할 군검 합동수사단은 서울 송파구의 서울동부지검에 설치하고, 검찰 측 수사단장은 서울중앙지검 노만석 조사2부장검사가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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