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을 보내며…죽음을 애도하는 우리의 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7일 14시 22분


신념 가지고 노력한 정치인의 悲報
그의 족적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자의적인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돼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행동은 이념의 선을 넘어서는 윤리의 영역
권위를 가진 자일수록 더 조심해야

비극이 모두에게 같은 무게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는 단신 뉴스에 불과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약한 하소연처럼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참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제 좀 그만 듣고 싶은 옛날이야기일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본래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는 지난주, 약자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한 명의 정치인을 잃었다. 정치적 생각이 달랐든 같았든, 그가 더 나은 사회를 꿈꾸었고 이를 앞장서 실천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노력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빚을 졌다.

모두가 부채감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 앞에서 조의를 표하고 말을 가리는 정도의 예의는 인간으로서 필요하다. 이는 고인에 대한 예의인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예의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이자는 것은 문명인에게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나한테는 큰 일이 아닌 것 같아도, 어떤 일을 몹시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앞에서 말을 고르는 정도의 생각은 있어야 한다. 내 일이 아닌 세상사에도 내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며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두의 삶에 더 기여하고 있다. 그에 무임승차해 온 삶을 반성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다못해 하루 정도는 참는 인내는 있어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은 당당함도 단호함도 아니다. 이에 더해 정치인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면 어째서 남들이 슬퍼하는지 생각을 해 볼 정도의 정치적 감각은 있어야 한다.

고 노회찬 의원의 부고에 한 정당 대변인은“자살은 남겨진 가족과 사회에 대한 죄”라 썼다. 그는 고인의 남겨진 가족이 아니다. 그에게는 사회에 대한 죄를 판시할 자격이 없다.

나는 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에 대한 첫 번째 반응으로 백보를 양보하여 고인의 명복을 비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자살은 죄’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인간과 같은 세상에 살아간다는 현실을 도무지 참을 수 없다. 그가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일정한 대표성을 띄고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는 점은 더더욱 견딜 수 없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줄이야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아니 알고 있기에 용인해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서의 최저선이 있다. 어떤 비윤리적인 발언, 비도덕적인 생각들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우리 공동체를 후퇴시킨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할 권위와 자신의 말을 언론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증폭할 권력을 가진 자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쓴다고 다 글이 아니고 한다고 다 말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행동을 해야 한다. 백 명이 사람답지 못하게 행동해도, “세상이 본래 그렇지 뭐”라고 말하는 대신, 백 번을 놀라고 거듭 놀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백 번을 거듭 말려야 한다.

평생을 사회에 헌신한 귀한 목소리를 잃은 상실감을 정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사라지자마자 죄 운운하는 말에 그러면 안 된다고 식겁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 이전에 명백히 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결코 본래 이렇지 않다. 타인의 상실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들 나 같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의 상실을 마음아파하고, 때 이른 죽음을 애도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남겨진 자신의 역할을 고민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할 말 안할 말 구분이라도 한다. 그 구분의 최저선조차 없는 자들보다 우리는 더 크게 말하고, 더 오래 살아야 한다. 진보고 보수고 따지기 전에, 그보다는 위에 인간의 선을 그어야 한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 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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