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 정박했다가 7일 떠난 진룽호를 비롯해 유엔 안보리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운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들이 연일 제지 없이 국내를 거쳐 정상 운항하고 있다. 석탄 환적지에서 문서로 북한산 석탄의 국적이 위조되는 정황들이 포착돼도 정부는 계속 “조사 중이다. 서류상으로는 문제없다”는 해명을 반복하고 있다. ‘신분 세탁’을 거쳤을 수 있는 북한산 석탄이 통관 서류상 문제가 없다면 국내로 꾸준히 반입되고, 추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으로 한국이 제재를 받아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 정보당국, 입항 알려지자 뒤늦게 관심선박 지정
4일 입항한 진룽호는 7일 오후 포항에서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되돌아갔다. 미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미국의소리(VOA)가 7일 위성사진 자료를 이용해 보도하면서 입항 사실이 알려졌다. 이 방송은 “1일 러시아의 나홋카항에 머물렀으며 검은색 물질 바로 옆에 선박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며 러시아에서 석탄을 싣고 포항에 입항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외교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진룽호는 이번에 (서류상)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하고 들어왔으며, 관계기관의 선박 검색 결과 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배가 지난 10개월간 북한산 석탄을 운반했는지 여부를 아직도 조사 중인데, 유독 이날은 포항에 입항한 지 사흘 만에 북한산이 아니라 러시아산 석탄을 운반했다고 결정한 것. 이날 중국인으로 보이는 진룽호 선원에게 기자가 영어로 “북한산 석탄을 하역하고 있느냐”고 묻자 “절대 아니다. 우린 러시아에서 왔고 석탄도 러시아산”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항신항센터가 이날 작성한 ‘요주의 선박 및 북 연계선박 입출입 현황’에 따르면 진룽호는 ‘308 관심선박’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신항 관계자는 “국가기관으로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고 관심선박으로 지정했다. ‘308’은 국내 정보당국이 부여하는 코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신항 측은 또 진룽호에 타고 있는 중국인 11명 등 선원 13명에 대해 당초 국내 상륙허가서를 발급했다가 뒤늦게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 방송 “러시아에서 서류 위조해 석탄 수출”
외교부와 관세청이 이번 진룽호의 석탄을 러시아산이라고 밝히는 근거는 석탄 그 자체가 아니라 원산지를 표기한 문서다. 그런데 세관당국은 문서 자체가 위조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과 이번 입항 시 수입신고서의 내용은 엇비슷한데 지난해엔 북한산 석탄을 싣고 왔다는 정보가 사전에 수집됐다는 점에서 (이번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산이라는 정보가 없어서 선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평안북도의 무역일꾼 등을 인용해 북한이 러시아 무역회사에서 서류를 위조해 석탄 원산지를 바꿔 각국에 수출해왔다고 전했다. RFA에 따르면 러시아 회사가 북한산 석탄이 도착하면 선박과 도착 시간 및 체류 시간, 석탄 하역량, 석탄 품질을 분석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서류를 작성한 뒤 러시아 석탄으로 위장하는 서류 작업까지 준비한다는 것. 한 소식통은 RFA 인터뷰에서 “2016년부터 경제제재가 본격화돼 석탄 수출길이 막히자 북한의 무역회사들이 러시아 나홋카항과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석탄을 보낸 뒤 러시아산으로 서류를 위장해 다른 나라로 수출해왔다”며 “수출용 석탄적재장을 중국과 가까운 남포항과 송림항에서 2016년부터 러시아와 가까운 청진항과 원산항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청진항과 원산항은 6월 27일 유엔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들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 선박들이 러시아 항구를 향해 북한산 석탄을 처음 실었던 출항지로 지목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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