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박 장관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 격오지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가 환자와 대면진료를 하고 정기적인 관리는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격의료 확대 방침을 처음 밝힌 것. 하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반발하자 박 장관은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하겠다는 뜻”이라며 한발 물러났다.
원격의료 확대를 위한 첫 스텝이 꼬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16일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도서벽지에 있어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환자들을 원격의료 하는 것은 선(善)한 기능”이라며 “지나치게 의료 민영화로 가지 않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격진료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선한 원격의료’를 내건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당정청은 본격적인 조율에 들어갔다. 그리고 소외지역과 군대 등 대면진료가 어려운 지역에 제한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의료법을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민주당 의원들 “시범사업도 하는데”
그동안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은 넘지 못할 장벽처럼 여겨졌다. 2010년 이후 정부가 수차례 원격진료 허용을 시도했지만 ‘집단 휴진’을 불사하는 의료단체와 진보진영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소외지역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물어본 결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제외하고 응답한 8명 의원 중 반대는 1명뿐이었다. 최근까지 반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것과는 큰 차이다.
이렇게 기류가 바뀐 것은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옮겨가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규제혁신 1호 현장방문으로 의료기기를 택하면서 의료 규제 혁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의료 분야는 규제가 해결되면 국민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혁신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원격의료 규제 완화를 개인정보 보호와 함께 최우선 규제 완화 대상으로 꼽았다.
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점차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한 의원은 “좀 더 전격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대체로 소외지역에 엄격하게 한정한다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도 인정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특히 도서벽지와 군부대 등에 이미 시범사업이 시행되면서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최첨단 의료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동시에 갖춘 한국이 원격의료를 막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와 여당은 재진환자나 경증·만성질환자로 대상을 확대하거나 병원의 영리사업을 늘리는 등 민감한 내용을 담았던 과거 법안과 달리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것이라 반발이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의원은 “대통령 발언도 시범사업과 같은 취지를 살려 계속 추진하자는 차원인 만큼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 靑, “원격진료 허용은 영리병원 허용과는 달라”
전면적인 원격의료 도입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소외계층은 약 1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경총은 원격의료 허용이 영리병원 설립으로 이어지면 최대 37만40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과 영리병원 허용은 다르며 원격진료 허용 범위 역시 최소한의 수준으로 제한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 조사에서 재진 환자 및 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원격의료 확대에 찬성한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에서 시행 중인 원격 의약품 처방과 배달 허용 역시 오제세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반대했다.
설문에서 유일하게 전면 반대 입장을 유지한 전혜숙 의원은 “편리성을 추구하다 안전성을 놓칠 수 있다. 직접 안 보고 어떻게 진료하며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찬성 당론이지만 여전히 일부 야당과 진보진영이 반대하고 있는 것도 과제다. 복지위 소속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은 “경제가 난국이라고 기업에 무제한 영리 추구를 허용하면 안 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현재 시범사업 중인 만큼 꼭 필요한 곳에 국한해 진행해야 한다”며 불가피한 지역을 넘어선 원격진료는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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