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12월에 발간하는 문재인 정부의 첫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적’이라는 문구의 삭제를 추진하는 것은 4·27 판문점선언의 적대행위 중지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의 성격이 강하다.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10여 개 시범 철수 등 군사적 긴장 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대화 상대’를 적으로 계속 두면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지금 상황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한반도 평화 화해를 추구할 협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 비핵화의 단초가 마련된 만큼 이를 가속화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화해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2016 국방백서’는 적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한의 ‘위협이 지속되는 한’이란 단서를 달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고 한국,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선 만큼 그 단서 조항이 일정 부분 해소됐으니 적 문구를 삭제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도 국방백서에서 ‘적’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사례가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동시에 성급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중에도 최근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정황을 보이는 등 핵·미사일 위협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 개념을 ‘선(先)폐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 더욱이 군내 정신전력 교육교재의 ‘적 표현’까지 삭제를 추진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오판과 장병들의 대적관이 흔들리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비판이 많다. 군 소식통은 “핵 개발 중단 검증과 군사분계선(MDL) 인근의 기습전력 후방 배치 등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될 때까지 적 표현은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화책이 우리의 안보의식과 대비태세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후보 당시 TV 토론회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언급을 피했다는 점에서 군이 현 정부 들어 처음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그런 시각을 반영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은 2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남북 GP 시범 철수 합의에 대해 “군사적 긴장 완화를 도모하고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조치”라면서도 “MDL 방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다소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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