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기자의 우아한]청년을 향한 ‘통일 대박론’ 대 ‘평화 대박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4일 17시 19분




“청년 세대에게 ‘민족’ 통일이라는 표어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통일주역세대가 될 청년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통일의 담론은 무엇이 있을까요?”

23일 화정국가대전략강좌에 참석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정치학 전공 4학년 박기범 학생이 서면 질의서 두 번째 질문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이날 강좌의 연사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그는 통일과 정치(민족)에 대한 물음에 평화와 경제(협력)이라는 키워드로 답했습니다. 그가 자문하고 있는 현 정부의 대북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전문을 소개합니다.

화정재단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강좌
화정재단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강좌
“저도 제 아이들에게 민족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젊은 대학생들을 위해서 못쓰는 글이지만 쉽게 한번 ‘통일을 보는 눈’이라는 책도 써 봤습니다. 저는 민족이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남들에게나 다 강요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한테요.

그러나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3면 바다만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들어간 경제발전을 했습니다. 명색이 반도국가고 명색이 기마민족이고 북방민족인데, 북방을 가로막힌 채로 이정도의 성장과 경제적인 발전을 했다면 바로 우리의 본원의 고향인 북방을 향해서 우리가 이 막혀진 철조망을 뚫고 나아가서 경제협력을 하고 문화협력으로 미래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건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감이 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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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통일은 어차피 후대가 결정하고 남북간에 전쟁 안하고 협력하며 사는 세상, 이게 일단 목표입니다. 평화와 경제가 목표입니다. 남북간에 평화와 협력은 바로 여러분, 지금 말한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고 주역되기 위해서 취직하러 앞으로 4년 뒤에 나갈 때 여러분의 취직자리가 생기는 먹거리다, 남북협력과 남북관계 뚫는 것이 우리의 먹거리고 우리 경제의 미래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북한하고 협력하고 북한 사람들과 대화해 보고 어떨 땐 가르쳐야 하고 어떨 땐 그들에게 배울 것도 있겠지요. 그러다 보면 아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구나. 그때 가서 느끼셔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4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종전선언과 한반도평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4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종전선언과 한반도평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북한의 변화가 청년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이야기했지만 암묵적으로는 ‘그래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이른바 ‘통일 대박론’에는 지금의 북한 정부가 소멸되고 남한이 한반도의 정치적 경제적 결정권을 모두 장악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반면 현 정부는 흡수통일론이 북한을 자극하고 긴장을 유발해 통일을 더디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휴전선 이북 지역의 정치와 경제를 지금처럼 북한 김정은 정권이 장악하며 핵을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상국가 북한 정부와 교류하고 협력한다는 구상입니다. 그래서 현 정부는 이 전 장관의 말대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비유하자면 ‘평화 대박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전 정부와 현 정부는 청년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질문을 한 박기범 학생의 생각은 어떨까요.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수반하는 보수진영의 흡수통일론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남북한 평화론 접근법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의 전제가 되는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섯 차례의 핵실험 가운데 네 번을 김정일 사후, 김정은 치하에 했는데, 본인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력 완성을 과연 쉽게, 또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박기범 학생은 두 번째 질문에 앞서 “김정은 체제/정권의 기반이자 김일성 3대 부자의 목표이던 핵무기를 과연 북한이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은 경제를 위해서 비핵화 하려는 것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핵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둘을 계속 저울질을 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날 청중석에서도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인데 우리 정부가 너무 빨리 많은 것을 양보하려고 한다”는 의견성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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