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와대 인사는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 사태를 이야기하던 중 이같이 토로했다. 외부 사람들을 만나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서 아예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선 그야말로 ‘부동산 트라우마’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아파트값 폭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노무현 정부 때처럼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한 8·31 대책을 비롯해 10여 차례 대대적인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집값 급등을 막지 못했다. 이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지지층의 이탈로 이어졌고, 중도보수층은 종부세 논란에 등을 돌렸다.
이런 인식은 올해 들어 발표된 부동산 대책들이 시장에서 효과를 보지 못하며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7월 종부세 개편 카드를 꺼낸 데 이어 8·27대책에선 투기지역을 추가 지정했지만, 부동산 가격은 치솟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잠이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청와대는 일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처방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설픈 메시지를 내놨다간 오히려 더 화를 키울 수 있기 때문. 청와대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이 고민이 많은 걸 모두가 알고 있어서, 다들 말을 못 꺼내고 있다”며 답답한 청와대 분위기를 전했다.
2년 뒤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여당은 마음이 더 복잡하다. 그러다보니 정부와 조율되지 않은 메시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3일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며 규제 위주의 정부 부동산 대책에 각을 세웠다. 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제출받은 신규 택지 후보지 8곳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공택지 지정은 땅값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최종 확정 발표 때까지 철저하게 보안에 부치는데 어떻게든 부동산 관련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국토교통부는 6일 LH를 상대로 신 의원 측에 자료를 제공한 경위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신 의원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부동산 정책을 놓고 당정청 간 혼선이 계속 이어지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섰다. 이 총리는 6일 국정현안조정점검회의에서 “집값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조금 더 신중했으면 한다”며 “초기 구상 단계의 의견은 토론을 통해 조정하고 그 이후에는 통일된 의견을 말하도록 모두 유념해 달라”고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 여당 의원도 “상황마다 임기응변식 대응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 선제적이고 세밀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폭등 여파로 민주당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리얼미터가 3∼5일 전국 성인 1504명(95% 신뢰수준 ±2.5%포인트)을 대상으로 조사해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1.8%포인트 내린 39.6%로 40%대 아래로 다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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