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이 여당 일각의 반발을 무릅쓰고 규제혁신 1호 법안으로 추진한 은산분리 완화법(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국회 문턱을 가까스로 넘었다. 이로써 KT, 카카오 등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지분 보유 한도가 기존 4%(의결권 있는 지분)에서 34%로 확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은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지 45일 만이다.
국회는 20일 본회의를 열어 전날 여야 원내지도부가 합의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과 지역특구법, 상가임대차보호법, 정보통신기술 융합촉진법,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 쟁점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중 지역특구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각각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심사에서 제동이 걸려 본회의 개회가 오후 2시에서 6시로 4시간가량 늦춰지는 등 막판 진통을 겪었다. 지역특구법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지역별 특성에 맞춰 규제 완화 특례를 규정한 법안이다. 산자위 법안소위에서 한 여당 중진 의원이 “지역특구법에서 산업단위로 규제를 푸는 것은 과도한 대기업 특혜가 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결국 해당 의원이 퇴장한 상태에서 산업단위와 사업단위 규제 완화를 모두 포함한 지역특구법이 산자위를 통과했다.
관심의 초점인 은산분리 완화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6명의 의원이 치열한 찬반 토론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재석 191명 중 찬성 145명, 반대 26명, 기권 20명으로 다른 쟁점 법안에 비해 여당 내 이탈 표가 많았다.
여당 의원끼리 찬반 토론을 벌이는 장면도 연출됐다. 반대 토론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이 법은 (대주주 자격 제한을) 특정 범위를 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백지위임한 후진국형 입법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같은 당 최운열 의원은 “인터넷은행 등장으로 은행 간 금리와 수수료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1970, 80년대 폐쇄경제 시절의 논리로 금융 산업의 미래를 가둬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부터 추진됐지만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재벌의 금융업 진출을 허용할 수 없다며 반대해 입법이 진척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지난달 문 대통령이 규제혁신 현장 방문에서 19세기 영국에서 제정된 ‘붉은깃발법’이 자동차 산업 성장을 가로막은 역사적 사례를 언급하며 은산분리 완화를 본격 추진한 것.
문 대통령의 규제 완화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당 지지 세력인 참여연대와 금융노조는 반발했다.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주면 인터넷은행이 재벌들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민주당 일부 의원도 법안 처리에 강하게 반대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한병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당정청이 모두 달라붙어 설득에 나섰지만 반대하는 의원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세 차례에 걸친 정책의총에서도 민주당은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실패했다.
야당과의 협상도 순탄치 않았다.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자격 제한 규정을 정하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 원 이상 대기업 집단)’ 표현을 법안 본문과 시행령 중 어디에 넣을지가 문제였다. 민주당은 해당 표현을 법조문에 넣고 정보통신기술(ICT) 사업 비중이 높은 대기업은 예외로 하자고 제안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관련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하자고 맞섰다. 이 때문에 당초 목표였던 8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는 무산됐다.
법안 통과가 늦어지자 이달 들어서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까지 직접 법안 처리를 챙기고 나섰다. 결국 여야는 대기업 집단의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제한을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ICT 자산 비중이 높은 대기업은 예외로 하는 중재안에 전격 합의했다.
부실 기업 회생을 지원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도 5년간 유효한 한시법으로 부활했다. 기촉법은 2001년 일몰법으로 제정된 뒤 그동안 네 차례 시효가 연장됐으며 올 6월 말 일몰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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