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화를 담은 영상에 욕설이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 “상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마음에 품은 채로는 절대로 함께 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씨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을 수 없는 분노’란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분노”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물론 ‘참을 수 없음’에 절대적 기준치가 있는 건 아니다”면서 “운전 중에는 다른 차가 약간 위험하게 끼어들었다고 별의별 욕을 다 퍼붓는 사람도, 지하철 안에서는 어지간한 추태가 아니면 못 본 척하기 마련이다. 장소의 공공성이 클수록, 상대가 높은 사람일수록, ‘참는 능력’도 커진다. 그러니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장소에서, 양측 정상의 환담이 끝나자마자, 무심코 ‘지X하네’라는 말을 내뱉은 사람이 평소 두 정상에게 얼마나 극심한 적개심과 증오감을 품고 있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는 남북 양측 정상에 대해, 남북 화해 분위기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적개심과 증오감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주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식당에서도, 술집에서도, 찻집에서도, 남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문 대통령과 남북 화해를 비방, 저주하는 사람은 무척 많다. 지난 70여 년간 계속된 적대관계 속에서 남북 양측의 절대다수 사람이 상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애국심’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왜곡된 정보’들이 그 분노와 적개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생산, 유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전쟁 위협이 소멸한다고 해서, 이 분노와 적개심까지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면 눈이 밝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색안경을 벗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김정은이 답방하면, 거리에 나와 ‘지X하네’보다 몇 백 배 심한 욕설을 쏟아 부을 사람도 아주 많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적개심이 사그라들기 전에는 남북 간 평화체제가 안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북 간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양측 사람들에게 쌓이고 쌓인 오해를 풀어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는 듯하다”며 “상대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감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치가 되기 전에는, ‘통일’이라는 말은 아예 입에 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끝으로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면서 “상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마음에 품은 채로는 절대로 함께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날 온라인에선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18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확산했다. 영상 중간엔 두 정상의 대화 뒤편으로 “지X하네”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남북정상회담 주관 방송사였던 KBS는 공식 입장문을 내고 “백화원 내부에서 비속어가 들리는 듯한 당시 촬영 화면은 방북 풀취재단 소속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없이, 청와대 전속 촬영 담당자와 북측 인사 등만 동석한 상황에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는 정확한 진상과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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