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고삐 직접 죈 트럼프…‘선 비핵화 후 체제 보장’ 거듭 강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7일 14시 44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까지 주재하면서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기 전까지 압박 강도를 유지하는 ‘선 비핵화 후 체제 보장’ 원칙을 전 세계에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를 주재하는 모두 발언에서 “한반도와 역내, 세계의 안전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한 준수에 달려 있다”면서 “북한과 협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진전이 계속되려면 비핵화가 일어날 때까지 기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박 간 옮겨 싣기 방식으로 안보리 제재 위반 사례가 발견되고 있는데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결의해 온 안보리 회의를 주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비핵화 속도를 내는 데 지렛대로 쓸 대북제재의 고삐를 직접 틀어 쥔 것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기존 제재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는 정황이 발견되고 있는데다, 남북이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를 합의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도 기자들에게 “(대북) 제재가 가해지면서 많은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며 “제재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백악관은 미일 정상회담 이후 보도자료를 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해상활동을 겨냥한 일본의 제재 노력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일본 등 핵심 동맹국이 해상 초계기를 동원해 북한과 제3국의 해상 밀무역을 정찰해 온 데 대해 감사 인사를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에 쫓기면서 북한에 끌려 다니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간 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며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혹은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시간 싸움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비핵화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북한은 더 많이 해체할 것이다. 스스로 앞서 나가고 싶진 않지만, 여러분이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 회의에서도 “언론에서 멀리 떨어진 뒤편에서 많은 일이 매우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약속한 미사일 기지 해체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핵 동결 조치 이외에 기존 핵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유엔 총회 연설에 이어 재차 북한의 비핵화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안보리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을 원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김정은이 평화와 번영을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 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나는 매우 가까운 장래에 김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며 “매우 가까운 장래에 장소와 시기가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또 다시 친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두 개의 편지를 받았다”며 “어느 시점에 이 편지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걸(비핵화를) 끝내길 희망하는 그의 태도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감명적인 편지들”이라며 “내가 틀릴 지도 모르지만 나는 (김 위원장이) 진짜 이걸(비핵화를) 끝내길 원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는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를 좋아한다. 우리는 잘 지낸다”며 “그는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편지들을 썼다”고도 했다. 또 친서 한 통을 아베 총리에게 보여줬을 때 아베 총리가 “정말 획기적인 편지”라고 말했다고 전하며 “역사적인 편지였다. 아름다운, 한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었다”고 극찬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정상회담 때 기자들 앞에서 양복 안주머니에서 친서를 꺼내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는 언제 어떤 경로로 친서를 받았는지, 두 통의 편지를 한꺼번에 받은 건 지 여부 등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날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통해 건네졌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리 외무상은 이날 오전 만나 ‘폼페이오 장관의 10월 4차 방북’을 결론 냈다. 국무부는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오늘 폼페이오 장관이 뉴욕에서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을 만났고, 폼페이오 장관은 다음 달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김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간 김 위원장 면담이 확정되지 않아 방북을 꺼려온 측면이 있었던 만큼 북한이 김 위원장의 초청을 명시해 폼페이오 장관을 초청한 것이 방북을 성사시킨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할 경우 비핵화 조치에 대한 최고위층 간의 의견 교환은 물론 2차 북-미 정상회담도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리 외무상과의 회동 이후 트위터에 “비핵화를 위한 후속 조치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며 “매우 긍정적인 만남이었다”고 썼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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