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특권이고 권력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1980년대, 카메라는 소풍처럼 특별한 날 선생님이 어깨에 메고 폼을 잡던 진귀한 물건이었다. 귀한 카메라를 아이들이 망가뜨릴까봐 조심성 있던 어른들은 장롱이나 다락 깊숙이 숨겼다. 지금은 초딩들도 주머니 속에 하나씩 가지고 다니지만 말이다.
권력이 있건 없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마찬가지. 순백 드레스, 공들인 헤어스타일로 카메라 앞에 서는 웨딩촬영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정점을 고정시켜두고 싶어서 일 것이다.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유명 인사를 만나면 셔터를 누른다.
요즘은 어딜 가나 자기를 주인공으로 찍어 간직하거나 SNS에 올린다. 그러다 보니 정작 행사나 의식의 주인공이 덜 부각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돌 그룹의 국내 공연장에는 스마트폰을 갖고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획사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매체와 인터넷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관리한다.
추석 직전 열린 남북정상회담에는 정재계와 대중문화인 등 수백여 명이 동행했다. 하지만 이들이 북한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을 내놓았다는 말은 별로 없다. 방북단 중 일부는 통신기능이 없는 스마트폰이나 조그만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이들이 찍은 사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걸러지지 않은 이미지가 모처럼의 평화 무드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다들 자제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한 방문단도 그렇지만 북한 인민들도 카메라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영빈관으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주민 10만 명이 한복과 양복 차림으로 꽃술을 흔들며 ‘조국통일’을 연호했다. 하지만 TV 화면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이 장면을 찍는 이들을 볼 수 없었다. 환영인파 속에서 누군가 셀카를 찍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 ‘그림이 안 되었을’ 것이다. 허나 완벽한 화면이 오히려 불편했다. 1% 부족한 사진이 진짜 현장이라는 것을 경험에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순간을 남겨두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는지, 행렬 가운데 검은 양복의 지도원들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화면을 보면 남북 정상 부부가 함께 식사했던 대동강수산물시장 식당의 북한 주민들은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스마트폰으로 식당 여기저기를 찍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등장 이후에는 모두 카메라를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김여정 부부장을 비롯해 평양 주민들 중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150만대가 보급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500만대가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북한에서도 카메라와 사진이 이제는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북한에서도 주민들이 자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진을 찍어서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인민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체제를 만든 북한에서 인민의 모습은 대중 매체에서 주인공으로 드러난 적이 별로 없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노동신문과 잡지에 인민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이 꽤 실렸다. 러시아의 사진촬영법이 전파된 이유도 있었겠지만 체제의 중심을 인민에 둔 분위기도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유일사상체제를 선택한 1960년 대 말 이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보다 큰 인민의 얼굴이 실리지 않게 됐다. ‘1호’ 이외의 얼굴을 클로즈업 촬영하면 곤혹을 치른다고 배웠다는 탈북 영화감독의 이야기도 있다. ‘왜 인민의 얼굴은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이 부분이 항상 아쉽게 느껴졌었고 의문이었다.
과도기인 지금이 지나고 나면 북한 주민의 일상이 대중매체를 통해서 보도되고 그들의 스마트폰 속의 사진들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전파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비로소 진정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외부에서도 느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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