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평양-뉴욕 중재외교 행보로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테이블 재편을 분주히 추진한 가운데, 답보 상태였던 북미 대화가 빠르게 재개되는 분위기를 갖춰나가고 있다.
한미 양국은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견인 방안의 지속적 모색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미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의 초청으로 다음달 평양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특히 한차례 무산된 바 있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주목된다. 북미 간 비핵화 진전과 상응조치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방북이 재추진 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을 매개로 한 북미 고위급회담에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등의 조율도 이뤄질 전망이다.
불과 한달 전 ‘빈손 귀국’이 우려돼 폼에이오 장관의 방북이 전격 취소된 것을 감안하면, 단절됐던 북미 대화는 문 대통령이 주도한 남북·북미 연쇄 정상회담을 계기로 빠르게 복원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북미 대화 급물살 배경에는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핵 신고’와 ‘종전선언’에서만 찾지 않고, 다각도로 협상 재개 입구를 모색해 북미 양측에 전달한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유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 대화는 그간 핵 신고와 종전선언의 맞교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진전되지 않았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의미있는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고, 이는 통상적인 비핵화 시작단계인 ‘핵 신고’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그 대가로 북한이 비핵화 초기단계 안전보장 조치로 원하는 종전선언을 준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양측은 서로 먼저 행동을 보일 것을 요구하며 협상의 유연성을 잃어갔고, 북미정상회담 이후 후속협상은 유의미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이같은 북미 협상 교착상태에서 양측 최고지도자를 만나 비핵화 협상 재개 의지를 확인하고, 협상의 판을 통 크게 다시 마련했다.
북한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가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도 ‘신고’나 ‘사찰’은 언급하지 않았다. 명확한 ‘핵 신고’를 제안하진 않았지만, 미국의 조치에 따라 ‘신고’와 ‘사찰’을 거쳐 핵시설을 폐기할 수 있다는 협상 카드를 던진 셈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렇듯 해석의 다양성이 남아있는 평양선언에 숨은 함의를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3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특히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상응조치에 따라 비핵화 조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함을 역설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방미 중 미국외교협회(CFR) 연설에서 “북한이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끌기를 할 경우 미국의 강력히 보복할 텐데 북한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김 위원장 발언을 공개해 비핵화 진정성을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이에 따라 취할 상응조치도 다방면으로 제시했다. 미국의 ‘선(先)핵 신고, 후(後)종전선언’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다양한 접점 모색 여지를 둔 셈이다. 문 대통령은 방미 중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는 대북제재 완화만 의미하지 않으며 종전선언과 더불어 인도적 지원, 예술단의 교류,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등이 상응조치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핵시설 폐기 참관을 위해 연락사무소를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설 외교채널인 연락사무소 가동은 북미 관계정상화 포석까지 염두에 둔 조치다. 북한이 줄곧 요구한 대북적대시 철폐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북한이 비핵화 과정을 장기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는 이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을 통해 “동력을 상실해가던 북미 간 대화를 정상적인 궤도로 복원시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미 성과”라고 밝혔다.
3박5일간의 미국 뉴욕 방문 일정을 마치고 27일 귀국한 문 대통령의 북미 대화 중재가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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