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리용호 유엔서 광폭 행보…달라진 北 위상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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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9월 28일 12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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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의전’ 받으며 방미 후 미·중·일·러 연쇄 회동
北美 비핵화 협상에 대한 주요국 ‘니즈’ 커진 탓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6일(현지시간) 제73차 유엔총회가 열린 미국 뉴욕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트위터) 2018.9.27/뉴스1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6일(현지시간) 제73차 유엔총회가 열린 미국 뉴욕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트위터) 2018.9.27/뉴스1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3차 유엔 총회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리 외무상의 광폭 행보는 지난 26일 뉴욕에 도착하면서부터 예견됐다. 미국 측에서 리 외무상에 대해 ‘계류장 입국’ 등 장관급 이상의 의전과 경호를 제공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입국 장면만으로도 예정된 북미 외교장관 회동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리 외무상은 도착 바로 다음날 가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회동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미국 측은 국무부 명의로 이 같은 사실을 공식 발표하는 등 북한을 온전히 ‘정상 국가’로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 도중 김 위원장의 친서를 꺼내 보인 것은 이번 유엔 총회에서 달라진 북한의 위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리 외무상의 광폭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동 이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한반도 현안에 밀접한 관련국이자 동북아 4강국과의 회동을 단 이틀 만에 전부 소화했다.

최근 북일 관계 개선 방안을 모색 중인 고노 외무상은 북일 외교장관 간 만남이 단순 접촉이 아닌 ‘회담’이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 역시 북일 외교장관 회담이 2015년 8월 이후 처음으로 열렸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왕이 부장과 리 외무상과의 회동 사진도 달라진 북한의 위상과 북중 관계의 현황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사진 속 왕이 부장은 리 외무상에게 뭔가를 안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두 외교장관 모두 미소를 띈 밝은 표정으로 찍힌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왕 부장은 회동에서 “새 시대에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공고히 발전시키는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중요 사항”이라며 “양국 외교부는 이를 위해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각 분야의 계층별 교류를 전개해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며 리 외무상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이 같은 리 외무상의 행보가 가능한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각국의 ‘니즈(needs)’가 커졌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국인 미국은 지난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북한과의 협상에 돌파구를 찾은 모양새다. ‘중재자’인 한국 정부를 통해 북미 간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진 않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 이은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의 협상 수순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중국의 경우 비핵화 협상 이후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참여와 관련한 포지션 확보가 관건이다. 최근 미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인해 대미 협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자칫 북미 간 협상 타결이 예상보다 빠르게 가속화되며 협상 판에 끼어들 타이밍을 놓친다면 대(對) 한반도 정책 구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과거 북핵 문제의 ‘6자국’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당사국이었던 러시아와 일본은 최근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소외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김 위원장의 방러 및 북러 정상회담을 지속 타진하며 북러 관계 확대의 추동력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못지않은 수준의 독자 대북 제재국이었던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엔 북일 관계 개선으로 완전히 노선을 바꿨다.

정부 역시 유엔 총회 폐막 때까지 뉴욕에 체류하는 강경화 장관과 리 외무상과의 회담 혹은 회동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강 장관과 리 외무상은 지난 평양 정상회담 당시 이미 의미 있는 조우를 한 바 있어 양측 모두 유엔 총회 계기 회동 여부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북한에 대한 각국의 ‘대접’과 북한의 외교 행보는 불과 일 년 전 유엔 총회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며 초강경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리 외무상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개 짖는 소리로 우리를 놀라게 하려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개꿈”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역대급 수소탄 실험’까지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기점으로 예상된 이번 유엔 총회에 협상의 총괄 책임자 역할을 담당하는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아닌 리 외무상을 파견한 것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유엔 총회라는 외교 무대를 감안하면 리 외무상이 나서는 것이 당연한 측면이 있지만, 북한은 직업 외교관인 리 외무상을 통해 광폭 행보를 펼쳐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김 부위원장을 필두로 외교 라인의 ‘전면 서포트’를 통해 비핵화 협상에 나서고 있다”며 “유엔 총회 계기 광폭 행보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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